《1백20㎞대의 능구렁이 변화구와 컴퓨터 제구력으로 프로야구 1백승 투수의 반열에 이름을 올려놓았던 전 OB투수 장호연씨(37). 그는 최근 감독직을 그만두긴 했지만 창단 2년에 불과한 순천 효천고를 올 7월 대붕기대회 준우승에 올려놓은 실력파다. 본보는 97프로야구 포스트시즌 기간에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는 주관과 독설로 유명한 「짱꼴라」 장호연씨의 야구 이야기를 싣는다.》 6일 쌍방울과 삼성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이 열리는 전주구장. 꿈에라도 잊지 못할 곳이다. OB와 해태의 87년 플레이오프 4차전이 이곳에서 열렸다. 쌍방울 김성근감독은 당시 OB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전날까지 2승1패로 앞서있던 우리는 기세등등했다. 이날도 선발 김진욱의 호투로 한국시리즈 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김감독은 나에게 불펜대기를 지시해 둔 상태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잘 나가던 우리는 유지훤선배(현 OB코치)의 9회말 실책으로 동점을 허용, 연장에 들어가 뼈아픈 역전패를 당했다. 김성근감독의 포스트시즌 징크스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사람들은 플레이오프에서만 다섯번 모두 실패한 그를 가리켜 「새가슴」이라고 비아냥거린다. 그러나 이는 결코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김감독이 맡은 팀들을 보라. OB는 당시 해태에 절대 열세였다. 86년 OB, 89년 태평양과 91년 삼성, 지난해 쌍방울도 마찬가지 경우다. 김성근감독은 경기에 이긴 날은 옷을 갈아입지 않는 등 소심한 면이 있긴 하지만 오히려 통이 큰 야구를 구사한다. 선수들을 하나의 부품처럼 다룬다는 통계야구 관리야구는 그의 한쪽 면만을 본 것이다. 그가 떠난 뒤 부상선수가 속출한다는 말도 삼성에서 다친 허리를 지난해 쌍방울에서 수술한 김현욱의 화려한 재기로 이젠 틀린 말이 됐다. 김감독은 손가락만 만져봐도 투수들의 컨디션을 아는 프로다. 손끝을 눌러본 뒤 피가 도는 속도로 진단하는 것이다. 김감독과 맞설 삼성 조창수감독대행. 감독으로서의 역량에 대해선 검증이 안된 상태지만 백인천감독의 사퇴후 보여준 용병술의 특색은 「저돌성」이었다. 마무리 박충식을 5회부터 일찌감치 투입한다든지 다음날 선발로도 기용하는 것을 보면 한번 확신이 서면 누가 뭐래도 밀어붙일 정도로 과감하다. 자, 이제 결전의 날이 밝았다. 백전노장 김성근감독과 신예 조창수감독대행. 이들이 펼치는 사령탑 머리싸움을 지켜보는 것은 선수들의 활약만큼이나 흥미로울 것이다. 장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