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 방송국의 유명 앵커와 차 한잔을 나눈 적이 있다. 그날 야구를 전혀 모를 것 같던 그의 입에서 느닷없이 야구이야기가 나왔다. 「야구는 믿음과 기다림의 스포츠」라는 게 그의 이야기의 골자였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하며 고개를 갸우뚱했으나 이내 그말의 뜻을 알아채고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다. 야구는 믿을 줄 알고 기다릴 줄 아는 선수끼리 펼쳐 보이는 스포츠다. 감독과 선수, 투수와 타자가 서로를 믿을 때 최상의 수확을 거두게 된다. 또 투수의 다음 투구동작을 여유있게 기다리고 못치는 공을 억지로 치기보다 좋아하는 공을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는 게 야구의 기본이다. 박찬호가 홈런을 많이 내주는 이유가 「믿는 야구」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자신이 점수를 내주면 동료 타자들이 그만큼의 점수를 뽑아낼 수 있다는 믿음이 없다. 따라서 볼카운트 1―3이나 2―3상황에서 무리하게 가운데로 공을 뿌리다 큰 것을 얻어맞는다는 이야기다. 그러던 그가 지난 12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경기에서 선발 7이닝 동안 안타 5개, 볼넷 4개로 4실점하면서도 타선의 지원을 받아 5승째를 챙긴 뒤부터는 「믿는 야구」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는 소식이다. 무척 다행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지난 15일 삼성과 현대의 국내경기에서는 한가지 아쉬움이 있었다. 삼성 박충식과 현대 정민태, 두팀의 에이스 맞대결에서 박충식은 현대 윤덕규에게 동점 홈런, 정민태는 삼성 양준혁에게 역전 홈런을 내주었다. 문제는 윤덕규는 2구, 양준혁은 초구를 노려 홈런을 만들어냈다는 데 있다. 박충식과 정민태 모두 타자들의 방망이를 믿지 못한 채 성급하게 승부를 걸다 한방을 내준 결과이기 때문이다. 하일성〈야구해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