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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성은 멎었지만, 음모론은 계속된다

Posted May. 04, 2026 09:07,   

Updated May. 04, 2026 09:07


“용의자는 잡혔지만, 음모론은 잡히질 않는다.”

최근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한 당국자가 지난달 백악관 출입기자협회 만찬 행사 중 총격 사건을 언급하다 한 말이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을 노렸던 용의자 콜 토머스 앨런은 신속히 제압됐고, 행사 참석자들은 모두 무사했다. 하지만 온라인 공간에선 이 사건이 ‘음모론’이라는 형태로 계속 증식하고 있다. 만찬장의 혼란은 몇 분 만에 정리됐지만, 인식의 혼란은 현재 진행형이란 의미다.

이 음모론의 화살은 대부분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다. 사건이 그의 자작극이었단 주장이다. 취임 이후 최저치로 떨어진 지지율 반등을 위해 그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내놓은 ‘반전 카드’란 주장부터, 백악관 내 대형 연회장 건설을 정당화하기 위한 연출이란 주장까지 난무한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총격 사건 직후 새 연회장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언급해 이런 의혹에 불을 지폈다.

이러한 음모론을 뒷받침할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수사 당국 조사에서도 자작극 정황은 드러나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 당국자는 기자에게 “당시 현장에 수백 명의 기자들이 있었다”며 “그 많은 기자 앞에서 사건을 조작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당시 상황은 현장 기자들을 통해 거의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미국 정치에서 음모론은 낯선 키워드가 아니다. 특히 대형 선거나 주요 정치 이벤트 등을 앞두곤 상대를 겨냥한 각종 음모론이 여론의 취약한 지점을 파고들며 확산되는 일이 반복돼 왔다. 다만 이번 사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한층 정교하고 설득력 있는 ‘이야기 구조’를 갖춘 채 사실처럼 유통되고 있단 점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 역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건이 연출됐다는 ‘거짓 깃발(false-flag)’ 음모론은 미국 정치에 만연해 있다”면서도, 특히 이번 총격 이후 음모론에 따른 성급한 판단들은 “두드러지고 강력하다”고 진단했다.

더 주목할 대목은 이 음모론이 반(反)트럼프 진영을 넘어,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 ‘마가(MAGA)’ 내부에서도 확산되고 있단 점이다. 이에 이를 트럼프 대통령의 영향력 약화 신호로 보는 시선도 있다. 이란 전쟁 등으로 누적된 불만이 음모론이란 형태로 분출되고 있단 해석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음모론을 정치적 무기로 가장 적극 활용해온 인물 중 한 명은 바로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는 과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출생지를 문제 삼는 ‘버서(birther)’ 논쟁을 부추겼고, 2020년 대선 패배 이후에는 ‘선거 조작설’을 제기하는 등 근거 없는 주장과 거짓말을 수도 없이 내뱉었다. 나아가 사법기관과 주류 언론까지 ‘딥스테이트’와 ‘가짜뉴스’로 규정하며 불신을 구조화하는 데 일조했다.

그런 면에서 그가 음모론의 표적이 된 현 상황을 두고 ‘자업자득’이란 평가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과거라면 주변부에 머물렀을 극단적 주장들이 이제는 정치 담론의 중심부까지 침투할 수 있는 환경을 연 장본인 중 한 명이 트럼프 대통령이란 지적이다.

만찬장의 총성은 멎었지만, 그 총성을 둘러싼 불신과 의심은 여전히 요란하다. 이는 좌우 이념 대립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오늘날 미국 정치의 단면이기도 하다. 음모론이 사실처럼 자라나는 토양에선 타협과 대화가 설 자리를 잃는다. 제도와 언론에 대한 신뢰는 무너지고, 공적 논의의 기반은 허물어진다. 더 우려스러운 건, 음모론의 일상화가 결국 현실의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단 점이다. 누군가는 흘려들을 말들이 다른 누군가에겐 극단적 행동의 명분이 되고 폭력의 면죄부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