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엘리어트를 연기하는 것은 마라톤을 하면서 햄릿을 연기하는 것과 같다.” -스티븐 돌드리
공연은 참여자들의 열정과 희생 없이는 완성될 수 없다. 특히 높은 난도의 작품일수록 그렇다. 무대라는 신기루를 좇아온 시간이 어느덧 수십 년, 조명이 꺼진 뒤의 객석에서 바라보는 무대에는 배우들의 땀과 숨, 그리고 관객의 반응이 잔향처럼 되살아난다. 그 순간마다 나는 프로듀서의 역할을 떠올린다. 불에 달군 쇠를 두드릴 때 받침이 되는 쇳덩이, ‘모루’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수많은 작품 가운데서도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내 심장을 가장 뜨겁게 달군 작품이다. 그리고 이 작품의 연출가 스티븐 돌드리가 남긴 한 문장은 프로듀서로서의 이정표가 됐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먼저 막막함이 밀려왔다. 탭댄스와 발레, 아크로바틱을 넘나드는 빌리 엘리어트의 살인적인 안무는 육체의 한계를 시험하는 ‘마라톤’이고, 광부 아버지와의 갈등과 꿈을 향한 몸부림은 ‘햄릿’에 비견될 깊은 내면 연기를 요구한다. 어린 소년의 어깨에 얹기에는 너무도 가혹한 무게다.
무대의 기적은 바로 그 불가능해 보이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발등이 부서질 듯 춤을 추는 순간, 고통을 뚫고 터져 나오는 감정은 계산된 연기를 넘어선 생명력이 된다. 돌드리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예술이란 인간의 한계를 끝까지 밀어붙일 때 비로소 닿는 영역이라는 사실을.
나는 매번 새로운 ‘빌리’를 선발하며 그 문장의 실체를 확인한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른 순간, 마침내 날아오르는 소년의 도약은 세상을 향해 던지는 가장 강렬한 독백이다. 그 아이들의 땀방울이 가르쳐 준 이 문장은 오늘도 나를 다시 무대로 이끈다. 가장 치열한 자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태어난다는 믿음을 품고, 나는 오늘도 ‘행복한 모루’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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