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에 한 번 열리는 핵비확산조약(NPT) 평가회의가 6주 앞으로 다가왔다. 전 세계가 모여 ‘핵무기를 가진 나라는 줄여 나가고 없는 나라는 새로 만들지 말자’고 약속하는 이 회의는 올해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공기 속에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외교가에선 “핵 비확산의 마지막 시험대가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감지된다. 2015년 NPT 평가회의는 중동 비핵지대 설정을 둘러싼 이견으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년 늦게 열린 2022년 회의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두 번 연속 최종 결의문을 내지 못했다. 이번 회의마저 빈손으로 끝난다면 세계의 핵공멸을 막고자 만들어낸 국제 비확산 체제가 ‘식물 조약’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러다 보니 세계 각국은 ‘핵 억제(Nuclear Deterrence)’ 경쟁에 나서고 있다. 핵 억제는 ‘네가 핵으로 공격하면, 나도 핵으로 보복한다’는 상호확증 파괴의 원칙에 따라 작동된다. 핵무기의 공포를 역으로 이용해 상호 간 섣부른 공격을 막는 심리적이고 군사적인 장치다. 핵무기를 가진 국가들은 핵을 늘려서, 핵무기를 갖지 못한 국가들은 동맹국의 핵우산을 통한 확장억지로 핵 억제력을 확보한다.
냉전 이후 한동안은 핵을 줄이자는 외침이 통했지만, 각자도생의 국제 질서가 본격화되면서 이제 ‘힘이 없으면 당한다’는 공포가 팽배하다. 핵 보유국인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후 수시로 전술핵 사용을 운운하며 노골적인 핵 협박에 나섰다. 북한과 중국은 기하급수적인 핵무력 증강에 나섰고 이란 또한 국제사회 눈을 피해 수백 kg의 고농축 우라늄을 은닉해 온 정황이 드러났다.
미국의 동맹국들 사이에서도 핵 자강론이 나온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핵탄두 수(현재 290기 수준)를 더 늘리기로 결정했다“며 공개적으로 핵전력 강화 의지까지 밝혔다. 핵 보유국들이 너도나도 핵 무기 증강에 나서는 데다 동맹 체제가 약화되면서 핵이 없는 국가들도 너도나도 핵 개발에 기웃거리는 눈치게임이 펼쳐지는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핵 없는 한반도’를 주장해 온 정부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북한이 기세등등하게 미국에 핵보유국 지위 인정을 요구하며 공공연하게 핵무기 증강에 나선 상황에서 오랜 시간 북한 비핵화를 외교 목표의 최상단으로 삼아 온 한국의 전략적 공간은 좁아지고 있다. 한미 핵협의그룹(NCG) 등 확장억지가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는 불안을 증폭시킬 기폭제가 될 수 있다.
핵 강화 경쟁의 파고가 높아지는 지금 우리 정부는 핵 억제 ‘그랜드플랜’을 그리고 있는가. 비핵화 원칙을 수호하되, 현 NPT 체제가 허용하는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권한 확대나 핵추진 잠수함 등 ‘평화적 핵 이용 권리’를 넓히는 일이 급선무다. 북한의 핵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재래식 전력의 확충도 숙제다. 정부 컨트롤타워가 당장의 방산 수출 실적을 홍보하는 데 집중할 게 아니라 미국의 확장억제와 맞물릴 첨단 전력을 정비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비확산 원칙을 수호하면서도 언제든 닥칠 수 있는 핵 개발 도미노 상황을 염두에 둔 대비도 필요하다. 눈치만 살피다 거저 얻는 안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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