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등록(불법체류) 이주아동 ‘그림자 아이들’의 실태를 세상에 알리며 국내 체류 자격 획득을 끌어냈던 페버 씨(27)의 가족이 다시 해체 위기에 처했다. 다섯 남매 중 막내가 성인이 되면서 ‘미성년 자녀 양육’을 조건으로 부여됐던 어머니의 한시적 체류 허가가 끝났기 때문이다. 인권 단체는 “페버 씨가 부모 초청을 위한 비자 자격을 갖출 때까지만이라도 체류를 허용해달라”고 호소했다.
11일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등에 따르면 법무부는 페버 씨의 어머니에게 이달 4일까지 출국할 것을 명령했다. 페버 씨의 부모는 1997년 나이지리아에서 한국으로 왔지만, 귀화 신청에 실패해 2007년 아버지가 본국으로 강제 출국당했다. 이후 가족 모두가 불법체류자로 전락했고,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인처럼 자란 페버 씨도 추방 위기에 놓였다.
2017년 5월 동아일보에 이런 사연이 보도된 이후 2021년 4월 법무부는 국내에서 성장한 미등록 아동의 양육을 위해 그 부모에게도 한시적 체류 자격을 부여했다. 이에 따라 페버 씨의 어머니는 아이들과 함께 한국에 남을 수 있었다. 이후 페버 씨의 어머니는 한국에서 다섯 남매를 홀로 키우며 사실상 한국인으로 생활해 왔다. 본국인 나이지리아와는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됐지만 2007년생인 막내가 성인이 되며 체류자격의 기한이 끝난 것이다.
절차대로라면 페버 씨의 어머니는 곧 강제퇴거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 페버 씨를 낳고 키워온 한국을 떠나 가족과 헤어져야 하는 것이다. 관련 단체들은 “부모가 본국으로 돌아가면 학비와 생활비가 미등록 이주아동의 몫이 돼 꿈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게 된다”고 했다.
가족이 함께 살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페버 씨의 체류자격인 E-7 비자(취업)를 F-2 비자(거주)로 변경하면 부모를 초청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정부가 내건 소득과 자산 기준이 높은 장애물이다. F-2 비자를 받으려면 연 소득이 4000만 원이 넘어야 하고 자산도 2000만 원 이상 보유해야 한다. 동생들의 학비를 대느라 돈을 제대로 모으지 못한 페버 씨로선 맞추기 힘든 조건이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는 이날 오전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무부에 정책 개선 권고를 요구하는 진정을 제기했다. 미등록 이주아동을 위해 활동해 온 한 변호사는 “미등록 이주아동의 안정적인 가족생활을 고려한 법무부의 정책은 매우 진일보한 정책”이라면서도 “성장한 이주아동들은 근면하게 일하며 법무부 정책 취지에 부합하게 살고 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비자를 바꾸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