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뮤지컬의 미국 브로드웨이 진출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됐다. 공연계는 1997년 한국 창작 뮤지컬 ‘명성황후’가 미국 뉴욕 링컨센터에 올랐을 때를 K뮤지컬의 해외 진출 효시로 본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27년 뒤 한국 뮤지컬이 현지에서 매진 열풍을 일으키고, 미 최고 권위의 토니상 작품상을 거머쥐는 날이 오리라고 내다본 이는 많지 않았다.
당시 ‘명성황후’는 현지에서 한인 커뮤니티 중심으로 이뤄졌고, 공연 기간도 짧아 현지 평단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뮤지컬이 산업화되기 시작한 기점인 ‘오페라의 유령’(2001년) 라이선스 초연 이전에 이미 한국 창작진의 뮤지컬이 브로드웨이에 소개됐다는 의미가 크다.
K뮤지컬의 해외 진출은 아시아를 중심으로 먼저 일어났다. 2010년대 이후 한류 열풍이 일어난 뒤 국내 창작 뮤지컬들의 라이런스 수출이 활발히 이뤄졌다. 2012년 일본에 성공적으로 수출된 뒤 중국 무대까지 이어진 대학로 터줏대감 뮤지컬 ‘빨래’가 대표작이다.
뮤지컬의 본고장답게 진입 장벽이 높았던 영미권은 초기엔 ‘공동 제작’ 형태로 진출이 성사됐다. CJ ENM이 토니상 수상작인 2013년 ‘킹키부츠’와 2019년 ‘물랑루즈’ 등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공동 제작자로 참여했던 것이 주요 사례다. 예주열 CJ ENM 공연사업본부장은 “오랜 기간 해외 라이선스 작품들을 들여오며 한국도 프로듀싱 역량이 생겼다”라며 “최근 K콘텐츠의 위상 자체가 높아지다 보니 영미권도 한국 프로듀서라면 어느 정도 인정하고 들어갈 정도”라고 말했다.
지난해 오디컴퍼니 신춘수 대표가 아시아인 최초로 브로드웨이 리드 프로듀서로 참여한 ‘위대한 개츠비’의 성과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브로드웨이, 올해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연달아 개막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토니상 의상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신 대표는 “한정된 기간만 공연하는 한국과 달리, ‘오픈런(Open Run·상시 공연)’이 목표인 영미권에서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면서도 “대학로를 중심으로 특색 있는 소규모 뮤지컬이 활발한 대한민국은 어느 나라보다 다채로운 작품을 만드는 저력을 지녔다”고 말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