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벨상 소식 이후 사흘간 1분도 안 쉬고 계속 인쇄기를 돌리는 중이다.”
13일 오후 3시경 경기 파주시 천공인쇄사. 입구에는 이제 막 인쇄된 소설가 한강(54)의 책이 높이 150cm 넘게 쌓여 있었다. 안에는 쉴 새 없이 인쇄기가 돌아가는 가운데 직원들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표지를 찍어내느라 바빴다.
‘한강 신드롬’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온라인 중고 사이트에서는 한강의 저서 중 양장본이나 초판본이 정가의 20배가 넘는 가격에 내걸렸다. 연세대 등 한강의 모교도 축하 메시지를 냈고, 한강의 부친인 소설가 한승원 씨가 사는 고향 전남 장흥군에선 마을 축제가 열렸다.
● 20배 넘는 가격에 중고 매물, 관련 음원 역주행
이날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 중고나라에는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30만 원에 판다는 글이 올라왔다. 원가(1만3000원) 20배를 넘는 가격이다. 같은 사이트에는 “‘소년이 온다’ 저자 서명본은 40만 원, 일반 초판은 20만 원에 사겠다”, “‘작별하지 않는다’ 초판 1쇄를 20만 원에 사겠다”는 구매 희망 글도 있었다.
한강이 차 안에서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고 밝힌 악동뮤지션의 노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는 이전까지 주요 음원차트에서 30위권에 머물다가 최근 10위권으로 ‘역주행’했다. 한강이 ‘작별하지 않는다’ 집필 당시 들었다고 한 곡이다. 유튜브에서는 ‘한강 애청곡’을 1시간짜리 플레이리스트로 만든 영상의 조회수가 1만 회를 넘기기도 했다.
● 한강 책 인쇄소, 사흘간 풀가동
한강의 책 인쇄를 담당한 인쇄소들은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 이후 연일 ‘풀가동’ 중이다. 천공인쇄사는 불과 최근 사흘간 한강의 책을 수만 권 찍어냈다고 밝혔다. 인쇄소 관계자는 “책을 사겠다는 문의가 끊이질 않아서 사흘 동안 하루도 못 쉬고 책을 찍고 있다”면서도 “몸은 힘들지만 한국에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나왔다는 사실에 다들 기쁜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강의 모교인 연세대는 축제 분위기다. 연세대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한강 수상은) 연세대의 자랑이며 보람인 동시에 한국을 넘어 전 인류가 공유하는 긍지와 성취”라고 밝혔다. 이어 “윤동주 이래 지금까지 이어진 연세 문학인의 감수성인 동시에 140년 가까이 이어온 연세 교육의 지표”라고 자축했다.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신촌캠퍼스 정문엔 “자랑스러운 연세인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축하합니다”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연세대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인 신지현 씨(23)는 “후배로서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한강의 모교인 서울 강남구 풍문고도 교문에 “노벨 문학상 수상 한강 작가 풍문고의 자랑입니다”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시민들 사이에서도 독서, 글쓰기 열풍이 불었다.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서울야외도서관 광화문책마당’에는 한강의 책이 진열됐다. 이곳을 찾은 시민들은 줄 서서 한강의 책을 살펴보며 책을 읽었다. 자녀를 ‘글쓰기 학원’에 보내야겠다는 부모들이 늘며 교육계도 들썩였다. 논술학원들도 ‘한강처럼 글 쓰는 법’ 등의 문구를 내걸며 홍보에 나섰다.
● 장흥서는 마을 축제도 열려
한강의 부친 한승원 작가(86)가 살고 있는 전남 장흥군 안양면 율산마을에선 이날 주민 1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한강의 수상을 축하하는 마을 잔치가 벌어졌다. 주민들은 한 작가에게 참석을 요청했지만 한 작가는 고마운 마음만 표현하며 참석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한 작가는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노벨 문학상을 받은 딸을 둔 아버지 역할이 너무 어렵다”며 “딸에게 (주민들이) 마을 잔치를 열려고 한다는 소식을 알리자 ‘잔치를 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거듭 밝혀 왔다”고 전했다. 이에 한 작가가 딸에게 “주민들이 스스로 마을 잔치를 개최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못 하게 하느냐”고 답변했다고 한다.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