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북한의 대남 오물 풍선 살포 등 최근 연쇄 도발에 대응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는 방향으로 방침을 정하고 법적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도발 수위를 고조시킴에 따라 2018년 4월 판문점 선언을 계기로 방송 중단 및 철거된 대북 확성기를 재배치하고 방송 재개 시점과 방식을 검토하고 나선 것이다.
정부는 오물 풍선 살포가 무력을 동원하지 않는 모호한 저강도 도발로 상대를 혼란시키는 ‘회색지대(Gray zone)’ 도발 전략이며 이를 통한 남남 갈등 확산 의도가 있다고 보고 대응 수위를 최종 결정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은 이날 오후 장호진 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확대회의를 열고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정부는 지난달 31일 ’최근 북한 도발 관련 입장’을 발표해 일련의 도발에 유감을 표하며 “북한이 멈추지 않는다면, 북한이 감내하기 힘든 모든 조치들을 취해 나갈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이 방안 중 하나로 검토된 것이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라며 “방송 송출에 필요한 콘텐츠는 이미 모두 준비돼 있다. 시점만 결정하면 된다”고 말했다. 정부 소식통은 “일단 확성기를 다시 설치해 언제든 방송을 재개할 태세를 갖춘 뒤 북한이 추가 도발할 경우 즉각 가동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걸로 안다”고 했다.
정부는 방송 재개에 무게를 두면서도 재개 요건 등 법률적 검토를 거친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 이후 9·19남북군사합의 일부 효력을 정지했고 북한은 9·19합의 전면 파기를 선언했다. 9·19합의는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합의다.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는 남북관계발전법(일명 대북전단금지법) 가운데 대북전단 살포 금지는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결했지만 대북 확성기 금지에 대해서는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대통령실과 정부는 9·19합의 효력 정지로 대북 확성기 방송 등을 금지한 남북관계발전법의 처벌 근거도 사라진다고 보는 입장이다. 하지만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1일 밤∼2일 낮까지 지난달 28∼29일(260여개) 살포량의 3배에 달하는 720여개를 한국 전역으로 날려보냈다고 군이 2일 밝혔다. 1일 오후 8시부터 시간당 20∼50개 정도로 2일 오후까지 오물풍선이 서울 도심과 경기·충청·경북지역에 날아들었다. 확인되지 않은 풍선을 포함하면 총 1000개가 넘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전파 교란 공격을 이어갔다. 지난달 29일 이후 닷새 연속이다.
장관석 j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