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가 잠도 못 자고, 밥도 잘 못 먹어요. 오죽했으면 흥신소에 학교폭력 증거 수집을 의뢰했겠어요.”
경기 김포시에 거주하는 한 초등학교 고학년 학부모 A 씨는 28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A 씨는 올 3월 흥신소에 자녀의 학폭 피해 관련 증거 수집을 의뢰했다. 지난해 12월 A 씨의 자녀를 폭행하고 언어폭력을 가해 4호 처분(사회봉사)을 받은 가해자 측에서 난데없이 “우리 애도 A 씨 자녀에게 폭행을 당했다”며 맞폭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A 씨는 가해자 측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학교에 보건실 자료를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학교 측은 “개인자료라 보여줄 수 없다”고 했다. 결국 A 씨는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 된 흥신소에 학폭 증거 수집을 의뢰했는데, 흥신소 측은 3일 동안 증거 수집을 하는 비용으로 100만 원을 청구했다.
● 흥신소 직원 “돈 내면 가해자 위협도 가능”
학교 측이 학폭 문제 해결에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며 흥신소나 탐정업체 등의 문을 두드리는 학부모가 늘고 있다.
서울 양천구에 거주하는 중학생 학부모 B 씨는 지난해 11월 심부름센터를 통해 2주간 자녀의 등하굣길에 경호원을 붙였다. B 씨의 자녀를 괴롭혀 4호 처분을 받은 가해 학생이 “특목고를 가야 하는데 너 때문에 망했다. 죽여버리겠다”며 협박했기 때문이다. B 씨는 “처음에는 2주 동안 휴가를 내고 직접 자녀를 따라다녔는데 이후엔 경호원을 붙였다”며 “아이의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실제로 인터넷 사이트에 ‘학폭 흥신소’를 검색하자 ‘100% 비밀 보장’ ‘후불제’ ‘상위 1% 흥신소’ 등의 문구를 내건 업체들이 나왔다. 직접 10여 곳에 문의하자 학폭 증거 수집뿐 아니라 등하교 서비스와 가해 학생 정보 수집 등도 가능하다고 했다. 한 업체는 “비용만 넉넉히 주면 가해 학생에게 위협도 가해줄 수 있다”고 했다. 비용은 한 주에 250만∼500만 원으로 천차만별이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사회적 거리 두기 해제 이후 대면수업이 재개되면서 학폭 관련 문의가 40%가량 늘었다”고 했다.
● “위법한 증거 수집 무용지물”
이처럼 학폭 피해 학생과 학부모들이 사설업체를 이용하는 건 학교와 경찰 등을 통해서는 학폭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인식 때문이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학폭을 당한 적 있다”고 응답한 학생 수는 약 5만4000명으로 2년 전 약 2만7000명에 비해 2배 가까이로 늘었다. 특히 언어폭력, 금품 갈취, 성폭력 등을 당했다고 밝힌 학폭 피해자 3명 중 1명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자녀가 학폭 피해를 당해 학폭심의위원회가 진행 중이라는 한 학부모는 “학교에선 ‘한쪽 편을 드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이유로 학폭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라며 “오죽하면 학부모들이 사설업체에 부탁하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학폭 해결을 위해 사설업체를 이용하는 건 위법의 소지가 있다. 심창보 서울남부교육지원청 변호사는 “학폭 가해자라고 해도 해당 학생을 미행하거나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크다”며 “명확한 증거를 확보했더라도 법원이나 수사기관에서 위법 행위로 수집했다고 판단하면 증거 자체로 채택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대건의 이지헌 변호사는 “사설업체 직원이 가해 학생을 찾아가 ‘친하게 지내라’, ‘괴롭히지 말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협박죄나 강요죄에 해당될 수 있다”며 “오히려 사설업체를 통해 해결하려다 피해 학생이 불리한 입장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설희기자 fact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