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친 곳은 없는데 정신적으로 충격이 너무 커요. 학교에 가서 제대로 생활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지난달 29일 이태원 참사 당시 현장에 있던 고교 1학년 A 군이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한 말이다. 사고 현장을 직접 겪은 이들 뿐만이 아니다. 뉴스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사고를 간접 경험한 이들도 “영상이 잊혀지지 않는다” “사고 사진을 본 뒤 잠이 오지 않는다”며 괴로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태원 참사가 전 국민에게 ‘정신적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 전례 없는 ‘전 국민 트라우마’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장은 31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이태원 참사가 그동안의 재난들과 가장 다른 점은 ‘목격에 의한 충격’이 매우 크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참사 현장에 있었던 시민들은 300명이 넘는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한 상황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
현장에 없던 시민들 역시 모자이크 없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빠르게 퍼진 사진과 영상을 보면서 참상을 그대로 목격했다. 회사원 박모 씨(42)는 “마치 나 자신이나 가족, 지인들이 압사 사고를 당한, 즉 남의 일이 아닌 내 일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참사가 벌어진 장소가 서울 한복판이라는 점도 충격을 더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태원 참사 발생 장소는 특별한 곳이 아닌,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익숙한 공간”이라며 “‘유사한 참사가 나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고 말했다.
○ 목욕 등 일상생활 어려울 땐 진료 필요
의료계에 따르면 재난을 경험한 뒤 나타나는 반응, 즉 ‘트라우마’에는 공포, 불안, 슬픔, 극심한 배고픔 혹은 식욕 상실, 두통 및 위장장애 등이 있다. 이런 반응은 충격적이고 두려운 사건을 겪은 후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다.
트라우마를 방치하면 후유증이 크기 때문에 빠른 대처가 중요하다. 심 센터장은 “재난을 겪은 직후 충분히 안정을 취하지 못하고 주변과 사회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면 예후가 좋지 않을 수 있다”며 “트라우마 반응이 생긴 후 회복될 것인지, 더 큰 후유증에 시달릴 것인지는 ‘초기 대응’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트라우마 반응이 나타난다면 반드시 정신건강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트라우마 반응이 1개월 이상 계속되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는 정신과적 질환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료가 필요할 정도의 트라우마 반응으로는 △식사, 목욕, 옷 갈아입기 등 일상생활이 어려운 경우 △다른 재난이 닥칠 것이라는 강박적인 두려움을 느끼는 경우 △기억상실이나 시공간에 대한 인지능력을 상실하는 경우 등이 있다.
○ 생존자에 “잊어버려” “운 좋았다”는 말 삼가야
참사로 인해 계속 불안한 마음이 든다면 마음을 안정시키는 방법을 활용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편안하고 안정된 자세를 취해 몸의 긴장을 줄이고 불안한 생각을 줄이는 ‘안정화 기법’을 추천했다. 대표적인 안정화 기법은 양팔로 자신을 감싸고 토닥이는 ‘나비 포옹법’, 발이 땅에 닿아 있는 느낌에 집중하는 ‘착지법’, 숨쉬기로 마음을 다스리는 복식호흡 등이 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면 주변의 도움도 필요하다. 이태원 참사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지인이 있다면 ‘말 한마디’라도 주의해서 해야 한다. 국가트라우마센터는 재난을 경험한 이들에게 해서는 안 될 말로 “그만 잊어버려” “더 나쁜 결과가 생길 수도 있었는데 운이 좋았다” “금방 좋아질 것” 등을 꼽았다. 재난에 따른 고통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함부로 예단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김소영기자 ksy@donga.com · 유채연기자 ycy@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