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두 권의 책을 쓰다

Posted March. 27, 2021 08:08,   

Updated March. 27, 2021 08:08

日本語

  ‘죽음이 다가오지 않는 사람이란 없습니다. 모두들 언젠가는 죽을 게 확실한데, ‘약속’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마흔을 갓 넘긴 나이에 유방암의 다발성 전이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철학자 미야노 마키코는 반복되는 방사선 치료로 건강이 악화되는 것을 느끼면서도 책을 쓰기로 결정한 것이 무책임한 행동이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일 약속조차 지킬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책을 쓰겠다는 장기적 약속이 무슨 의미인가에 대한 숙고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인생을 과연 완벽히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에 대한 성찰을 통해 죽음 앞에서도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죽음을 앞둔 철학자가 투병하며 얻게 된 사유를 털어놓은 대상은 의료인류학자 이소노 마호. 시한부 선고를 받고 예정된 강연을 취소하려던 저자에게 강연 주최자인 이소노는 “어쩌면 건강한 내가 당신보다 먼저 교통사고로 죽게 될지 모른다”며 그를 만류하고, 이를 계기로 두 여성은 편지를 주고받게 된다. 미야노와 이소노가 주고받은 스무 통의 편지가 이 책에 담겼다. 두 사람은 인간에게 찾아드는 만남과 질병, 반드시 맞닥뜨리게 되는 이별과 죽음, 죽음이라는 정해진 운명 앞에서도 멈출 수 없는 인간의 삶에 대한 고민을 나눈다.

 책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암 환자에게 사회가 갖는 선입견, 그로 인해 환자라는 한정된 정체성 앞에서 신음하는 이들의 고민을 담았다. 삶과 죽음, 건강과 질병, 보호자와 환자와 같은 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 인해 한 인간이 만들어 온 삶이 한순간에 ‘환자의 삶’으로 바뀔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조명한다. 미야노는 아픈 사람의 정체성이 환자라는 점에 고정되는 순간 그의 앞에 놓은 수많은 인생의 기회와 가능성이 사라져버린다고 지적한다.

 암 선고를 받은 후에도 수많은 강연과 행사에 참여하고 두 권의 책을 쓴 미야노는 이 책의 서문을 쓰고 몇 시간 뒤 의식을 잃었다고 한다. 그리고 보름 뒤 삶을 마감한다. 저자의 생애 마지막 기록에서 인간이 끝까지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는 길을 엿볼 수 있다.


김재희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