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왕의 누이가 된 왕비

Posted March. 25, 2021 08:17,   

Updated March. 25, 2021 08:17

日本語

 역대 최악의 남편을 꼽으라면, 영국의 헨리 8세가 1위에 오르지 않을까 싶다. 결혼을 여섯 번이나 한 데다, 왕비 두 명은 쫓아냈고 두 명은 누명을 씌워 참수까지 시켰으니 말이다. 이 그림 속 모델은 클레베의 앤으로 여섯 왕비 중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여인이다. 그녀는 폭군 남편의 칼날을 어떻게 피할 수 있었을까.

 여성 편력이 심했던 헨리 8세는 세 번째 왕비가 사망하자, 네 번째 왕비를 물색했다. 정치적 목적으로 추진된 정략결혼이긴 했으나 무조건 미녀를 새 왕비로 맞겠다고 못을 박았다. 이때 신교 국가인 독일 클레베 공국의 앤 공주가 후보로 추천됐다. 왕은 궁정화가였던 한스 홀바인을 보내 신붓감의 초상화를 그리게 했고, 그림 속 공주의 우아하고 정숙한 모습에 반해 주저 없이 결혼을 결심했다. 그런데 영국에 도착한 앤의 실물을 본 헨리는 경악하며 노발대발했다. 그림과 달리 너무 못생겼기 때문이었다. 25세의 새 신부를 ‘플랑드르의 암말’이라 부르며 합방도 거부했다. 당시 49세였던 왕은 뚱뚱한 몸집에 다리에 찬 고름으로 온몸에 악취가 진동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은 생각지도 않고, 젊은 왕비의 외모만 탓했다. 게다가 앤은 가사 교육만 받은 탓에 문학이나 예술적 소양도 없었고, 영어도 할 줄 몰라 의사소통이 힘들었다. 결국 왕은 결혼 6개월 만에 혼인 무효를 선언하고 19세의 궁녀를 새 왕비로 맞았다.

 다행히 앤은 영민한 사람이었다. 선대 왕비들처럼 명분이나 명예에 집착하지도, 권력을 지향하지도 않았다. 그 대신 왕의 누이가 되어 실리를 챙겼다. 의붓자식들과도 사이좋게 지냈고, 자신의 시종이었다가 왕비가 된 캐서린 하워드에게도 예를 다했다. 왕에게 순순히 협력한 대가로 궁전과 영토, 넉넉한 연금도 보장받았다. 잠깐의 결혼 생활은 불행했지만 폭군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여생은 평화롭고 행복했다. 변덕스러운 왕을 충족시킬 미모나 재능은 없어도, 자신과 고국을 지킬 지혜와 처세술을 가진 덕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