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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國 아일랜드, 국민투표로 낙태 허용

가톨릭國 아일랜드, 국민투표로 낙태 허용

Posted May. 28, 2018 08:29,   

Updated May. 28, 2018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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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생명권을 인정한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도 산모와 동등한 생명권을 가진다.”

 1983년 국민투표에서 67%의 찬성으로 개정된 아일랜드 헌법 8조다. 인구 78%가 가톨릭 신자인 아일랜드는 가톨릭 교리를 충실히 지키며 유럽에서 가장 엄격하게 낙태를 금지해 왔다. 낙태를 하면 최대 14년형이 선고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수정 헌법이 발효된 1983년 이후 약 17만 명의 아일랜드 임신부가 원정 낙태를 위해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로부터 35년, 여성 인권의 신장 흐름과 맞물려 헌법 8조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25일 아일랜드에서 실시된, 낙태 허용을 위한 헌법 개정 국민투표에서 찬성 66.4%, 반대 33.6%로 헌법 8조 폐지가 확정됐다. 투표율은 상당히 높은 64.1%를 기록했다.

 낙태 찬성 캠페인을 이끌어온 리오 버라드커 총리는 투표 결과 발표 후 “지난 10∼20년 동안 아일랜드에서 축적돼 온 조용한 혁명의 결과”라며 “우리는 여성들이 자신의 건강을 지킬 권리를 존중한다”고 반겼다. 의사 출신인 그는 지난해 총리로 선출될 당시 2018년에 낙태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했었다.

 여성단체들은 1983년 이후 35년간 아일랜드를 ‘젊은 여성들의 수용소’라고 비판하며 끈질기게 투쟁을 벌여왔다. 1992년 미스 X(가명)는 14세의 나이에 가족의 한 친구로부터 강간을 당해 임신했다. 이 소녀가 자살까지 생각하자 부모는 원정 낙태를 위해 영국행을 결심했다. 그러나 법원은 낙태를 막기 위해 9개월 동안 출국을 금지시켰다. 항소 끝에 산모의 자살 충동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영국행이 허락됐지만 사회적으로는 낙태 금지에 대한 반감은 커졌다.

 낙태 허용을 위한 사회운동에 불을 붙인 건 2012년 31세 젊은 나이로 숨진 사비타 할라파나바르였다. 치과의사 자격 시험을 준비 중이던 인도 출신 사비타와 의료기계 회사에 다니는 남편 프라빈은 2012년 아기 임신 소식을 들었다. 두 사람은 부부의 이름을 합친 ‘프라사’라는 태명을 부르며 행복해했다. 그러던 임신 17주 차 사비타는 위경련 증세가 있어 동네 병원을 찾았다. 그날 밤 그녀의 양수가 터졌고 산모의 감염 위험이 높아 아이를 살리기 어렵다는 의사의 진단을 들었다. 결국 사비타 부부는 아이를 지우고 산모를 살리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병원은 “태아의 심장이 뛰고 있어 당장 아이를 지울 수는 없다”며 사흘 동안이나 시간을 끌었다. 아이는 사망했고, 그사이 패혈증 증세로 고열을 오가던 사비타도 결국 숨졌다.

 이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아일랜드 전역은 물론 런던과 인도 델리까지 시위의 불길이 번졌다. 낙태 허용 캠페인을 이끄는 데트 매클로플린 씨는 “사비타를 보며 모두가 이 일이 언제든지 나 자신, 혹은 내 부인, 내 딸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이 사건 이후 아일랜드는 2013년에 임신부의 생명에 지장이 있을 경우에는 제한적으로 낙태를 허용하도록 규정을 완화했다. 사비타의 아버지는 26일 국민투표 결과 소식을 인도에서 듣고 “너무나 행복한 날”이라며 기뻐했다.

 아일랜드의 낙태 국민투표는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았다. 페니 모돈트 영국 여성평등부 장관은 “아일랜드의 역사적인 날로 북아일랜드도 희망이 보인다”고 말했다. 임신 24주 이내 낙태를 허용하고 있는 영국과 달리 북아일랜드는 엄격하게 낙태를 금지하고 있다. 낙태를 사실상 금지하고 있는 폴란드, 브라질 등에서도 허용을 요구하는 여성계의 목소리가 거세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몇 년간 유럽을 뒤덮었던 극우 포퓰리즘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낙태 반대 움직임에 대항해 자유주의적 전환점을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이번 개헌으로 아일랜드 정부는 조만간 임신 12주 이내 중절 수술에 대해서는 제한을 두지 않고 12∼24주 사이에는 태아 기형이나 임신부의 건강 또는 삶에 중대한 위험을 미칠 우려가 있을 경우에만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으로 법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동정민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