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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부 광동제약 회장30년간 한약재료 직접 검수 최씨 고집

최수부 광동제약 회장30년간 한약재료 직접 검수 최씨 고집

Posted July. 25, 2013 03:03,   

24일 강원도 평창의 한 골프장에서 심장마비로 숨진 채 발견된 광동제약 최수부(77) 회장은 한방 제약업계에 전설적인 인물로 꼽힌다.

1936년 일본 기타큐슈 후쿠오카현에서 5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난 최 회장의 학력은 초등학교 4학년 중퇴. 일본 학생들에게 조센진이란 놀림을 받는 것을 견디다 못해 일본인 동급생들을 두들겨 패고 학교에서 쫓겨났다. 해방 이후 귀국했으나 부친이 재산을 1년 만에 탕진하고 앓아눕는 바람에 12세 때 아홉 식구의 가장()이 됐다. 최 회장은 자서전에서 나무를 해서 내다팔거나 모래밭에서 참외를 키우고 담배장사와 엿장수를 하는 방법으로 생계를 이어갔다고 회고했다.

최 회장은 군 제대 이후인 1960년 고려인삼산업사 외판원으로 입사했다. 집요한 근성으로 3년 연속 판매왕을 차지하면서 창업 종잣돈을 모았다. 1963년 서울 용산구 동빙고동에 현재의 광동제약을 창업해 한방의약품인 경옥고 등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후 1973년 거북표 우황청심원과 1975년 광동쌍화탕 등 회사의 대표제품을 탄생시켜 광동제약을 중견제약사로 일궜다.

특히 최 회장은 우황청심원 광고에 직접 출연해 약품 재료를 직접 검수하고 확인하는 고집스러운 모습으로 최씨 고집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는 광고에서 우황, 사향만큼은 30년째 제가 직접 고릅니다라고 말해 소비자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는 회사가 1차 부도 위기까지 몰렸지만 과감하게 사재()를 출연하는 동시에 종업원들의 보너스 반납 등을 이끌어내 회사를 회생시켰다.

2000년대에는 회사를 다시 한 번 도약시켰다. 2001년 에너지드링크제인 비타 500와 옥수수차인 옥수수수염차 등을 잇달아 내놓으며 국내 음료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품질에 대한 집요한 고집 역시 그대로 이어졌다. 최 회장이 비타500의 시제품을 50차례나 퇴짜를 놓았던 일화는 유명하다. 덕분에 비타500은 2005년 자양강장제 드링크 시장에서 무려 41년간 1위를 고수한 동아제약의 박카스를 밀어내고 1위를 꿰차기도 했다.

그는 생전에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기업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며 계속 바꾸고 투자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번에도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휴가를 떠나기 직전까지도 경영 전반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챙겼던 것으로 전해졌다.

최 회장은 제약산업과 기업문화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목련장(1996년) 등 훈포장을 받았고 대한경영학회(2008년) 등 국내외 기관이 수여하는 경영인상을 수차례 수상했다. 저서로는 뚝심경영(2004)이 있다. 슬하에 1남 3녀를 두고 있다. 최성원(45) 광동제약 사장이 막내아들이고, 이강남 광동한방병원 이사장이 셋째 사위다.

류원식김유영 기자 rew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