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오피니언] 돈의문 복원

Posted December. 11, 2012 08:56,   

日本語

조선의 도읍지 한양은 조선의 개국공신인 삼봉 정도전의 음양오행설에 따라 설계된 계획도시다. 조선 건국의 사상적 기반인 유교이념과 인의예지신의 음양오행 사상은 한양 성곽에도 잘 나타나 있다. 한양 성곽의 출입구인 흥인문() 돈의문() 숭례문()에 각각 인의예 글자가 들어 있다. 종을 걸어놓기 위한 누각인 보신각()에는 신() 자가 포함돼 있다. 흥인문 돈의문 숭례문에 북문()인 숙정문()을 포함한 것이 4대문()이다.

한양 도성의 서대문()은 돈의문이다. 정도전이 명명한 돈의문은 글자 그대로 의()를 실천하는 데 힘쓴다는 의미다. 1396년(태조 5년) 지금의 사직터널 부근에 축조됐다가 1422년(세종 4년) 종로구 신문로2가 쪽으로 옮겨졌다. 임진왜란 때 선조가 왜군을 피해 의주로 피란 갈 때 이 문을 이용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가 1711년(숙종 37년) 재건됐지만 일제강점기인 1915년 일제가 전차 복선화를 추진하면서 철거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원래 돈의문 위치는 개국공신 이숙번의 집 앞이었다. 그러나 이숙번이 정종이 거주했던 인덕궁(현 청와대 부근) 앞의 작은 계곡이 좋은 자리라고 주장해 위치를 변경했다. 이숙번은 자기 집 앞에 백성과 마차가 오가는 문을 두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개인의 이해관계 때문에 공공사업의 위치가 변경된 사례다. 이숙번은 권세를 믿고 오만방자하게 처신하다가 유배지에서 최후를 맞는다. 그래도 백성들은 돈의문을 신문() 또는 새문이라고 부르며 편리하게 이용했고 오늘날 신문로라는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

유네스코가 한양 도성을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한 것을 계기로 4대문 가운데 유일하게 복원되지 않은 돈의문을 다시 세우는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 잠정 목록에 올라가면 1년 후에는 정식 등재 신청자격이 부여되므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가능성이 높다. 한양 도성은 산 위에 세운 산성()과 평지 위의 평성()이 조화를 이루고 있고 600년 도읍지의 역사와 백성의 숨결이 살아있는 공간이다. 2008년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에 이어 돈의문까지 복원되면 4대문을 다 갖추게 되고 한양 도성의 문화유산 가치는 높아진다. 돈의문 복원을 전제로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정 성 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