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사설을 통해 김정은 시대 개막을 사실상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김정일 사망 6일 만이다. 김정은은 북한권력 서열 1위 자리인 노동당총비서나 국방위원장에 미처 앉을 새도 없었지만 김 씨 왕조의 적통()이라는 백두산 뿌리 하나로 김정일이 쥐었던 최고 권력을 이어 받은 것이다.
노동신문은 어제 1면 전면() 사설에서 위대한 김정은 동지의 두리(둘레의 북한말)에 단결하고 그의 영도를 충직하게 받아들이자고 했다. 북한이 주요 국정사안을 노동신문을 통해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 사설은 김정은 후계체제 출범을 공식 선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내각기관지도 혁명 진두에 주체혁명위업의 위대한 계승자이고 당과 군대와 인민의 탁월한 영도자 김정은 동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17년 전 김일성 사후 김정일의 절대자 등극도 전광석화였다. 김일성 사망 이틀째부터 김정일은 수령으로 불렸고 추모대회 직후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와 최고인민회의는 충성을 맹세하며 머리를 숙였다. 후계 준비기간이 짧은 김정은은 대내외에 권력의 공고함을 과시하기 위한 대관식()을 서두를 가능성이 높다. 천출위인() 김정은이라는 상징조작에 세뇌 받고 충성을 강요당할 북한 주민의 처지가 딱하다.
노동신문은 유훈()을 받들어 선군()영도와 자위적 국방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2대()에 걸쳐 파탄에 이른 국정의 방향을 3대째에도 답습하겠다니 답답하다. 과감한 개혁개방과 시장경제 도입, 헐벗고 굶주린 주민들을 위한 위민정치()를 표방하는 구절은 노동신문 사설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여야 대표와 회동을 가진 자리에서 북한사회가 안정되면 얼마든지 유연하게 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김정일 유고()는 꽉 막힌 남북관계에 기회의 창이 될 수도 있지만 현재로선 앞날을 예측하기 어렵다. 중국과 미국이 김정은 체제를 사실상 인정했다. 북한의 새 지도부가 한반도 평화를 저해하는 행동에 나서지 못하도록 제어하자면 우리는 최고 지도자가 김정은 이건 제3자건, 아니면 집단지도체제이건 대화의 상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부가 1994년 김일성 사망 때 북한 붕괴론에 매몰돼 정책적 실패를 맛본 것처럼 현 상황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평가하는 것도 위험하다. 예상치 못한 변수로 급변사태를 맞을 가능성을 포함해 장기적인 대비 태세를 갖춰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