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9가지 위험징후 한국경제, 일본 닮아간다 (일)

9가지 위험징후 한국경제, 일본 닮아간다 (일)

Posted December. 10, 2010 07:54,   

日本語

김종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최근 일본에 출장 갔다가 깜짝 놀랐다. 서점의 사회학 코너에는 불평등사회 일본, 빈곤사회 일본 등과 같은 제목의 책들이 서가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지하철과 공원 곳곳에는 노숙인들이 보였다.

그는 유학 시절인 1980년대 중후반, 일본인들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네온사인은 화려했고 손님을 태운 택시가 줄지어 다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경제적 격차도 크지 않았다. 공산주의 국가가 중국이 아니라 바로 일본이라는 자신감 섞인 우스갯소리도 있었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의 중장기 경제전망을 연구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지금부터 일본과 다른 길로 가지 않으면 한국도 침체하는 일만 남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자주 나오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 패러다임 변화에 실패하면서 잃어버린 20년의 터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일본이 10년 뒤 한국의 모습이 될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한일, 9가지가 닮았다

일본 전문가 6명은 2000년대 들어 한국과 일본 사회의 닮은 점으로 저출산 고령화 비정규직 문제 심화 양극화 낮아지는 잠재성장률 회사 중심 사회 청년들의 좌절 기존 성장모델 고수 창의적 제품 부족 혁신형 창업 부족 등 9가지를 꼽았다. 이들이 꼽은 9개 현상은 공교롭게도 침체된 일본을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다. 일본은 1990년대 이후 소비침체로 내수가 살아나지 않으면서 성장률이 급격히 떨어졌다. 19551970년대 초까지 연평균 10%씩 성장하던 일본은 1990년 이후 약 1% 수준에 머물고 있다.

제조업 강국에만 머물다 보니 일본 경제의 미래도 밝지 않다. 공산품 가격은 기술 발전에 따라 계속 떨어지는 데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국가들이 제조업의 새 강자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혁신적인 제품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나가는 미국과 비교하면 일본의 부진은 더욱 선명해진다. 1980년 일본의 경상 국내총생산(GDP)은 미국의 37.9% 수준이었지만 2008년에는 33.8%로 줄어들었다.

침체의 시작은 저출산 고령화

저출산은 생산연령인구의 감소경제활동 및 소비시장의 위축고용 환경의 악화세금 증가 및 생활기반의 악화저출산의 심화라는 악순환을 낳게 한다. 경제의 파이도 줄어들게 만든다.

일본의 인구는 1995년 생산가능연령인구(1564세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2005년부터는 총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미 일본의 식품, 의류, 유아 및 아동용품 시장은 인구 감소에 따라 축소되고 있다.

한국은 2017년부터 생산가능연령인구가 줄어든다. 하지만 그 속도는 일본보다 빠르다. 올해 전체 인구에서 생산가능연령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일본이 63.9%, 한국은 72.9%이지만 매년 격차가 줄어들다 2050년이 되면 일본(51.8%)과 한국(53.0%)이 거의 같아진다.

고령화 역시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는 주범이다. 100세까지 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노인들이 지갑을 닫기 때문이다. 이른바 장수 리스크다. 일본은 2006년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 중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현재 한국의 노인인구 비율은 11% 정도다. 하지만 2018년에는 노인인구가 전체의 15%를 넘으면서 고령사회로 진입하고,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가 된다. 2050년에는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고령국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핵심 문제는 제조업+에 실패

노구치 유키오() 와세다대 금융경제대학원 교수는 1970년 이후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를 분석했다. 2008년 브라운관 TV의 가격은 1970년의 9%에 불과했고, 나머지 공업제품의 현재 가격도 대체로 1970년대에 비해 약 10분의 1 수준이었다. 반면 같은 기간 서비스 가격은 5배 정도 올랐다. 공업제품 가격 대비 서비스 가격은 50배 정도 오른 것이다.

노구치 교수가 밝힌 수치는 제조업 강국 일본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제조업에만 머무른다면 위기에 강할 수는 있겠지만 큰 폭의 경제성장을 이루기는 힘들다. 게다가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일본의 제조업은 허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저가 노동력을 찾아 해외 아웃소싱을 늘리고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했지만 품질관리를 할 수 없었다. 이는 지난해 말 일본의 자존심인 도요타가 대규모 리콜을 하는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정유훈 국회 예산정책처 연구원은 일본도 워크맨 신화를 만들었지만 워크맨은 단순 제조품이어서 경쟁사들이 금방 따라올 수 있었다며 미국의 아이패드, 이탈리아의 페라리와 같은 제품이 나올 수 없는 구조가 일본 제조업의 한계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한계는 한국 산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국도 일본과 같이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 지식기반경제로 가는 산업 발전 흐름을 보였다. 하지만 아직 지식기반경제의 경쟁력은 약하고 제조업의 수준도 일본보다 떨어진다.

이우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한국이 앞으로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일본처럼 침체할 수도, 아니면 계속 성장할 수도 있다며 이제 한국은 강한 제조업에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접목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박형준 김창원 lovesong@donga.com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