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삼성전자가 중국 정부로부터 액정표시장치(LCD) 생산라인 투자 허가를 따냈을 때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투자 허가를 신청한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 중 한 곳만 허가를 받을 것이라는 예상이 주를 이뤘고 둘 중에서는 LG디스플레이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삼성과 LG가 모두 투자 허가를 받았다. 여기에는 3일 인사에서 승진한 이재용 사장(42)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장은 여러 차례 중국 출장을 갔고 막후에서 중국과의 협상을 이끌었다는 후문이다.
이부진 호텔신라삼성에버랜드 사장(40)은 최근 롯데면세점과의 명품 브랜드 루이뷔통 유치전에서 승리했다. 그 덕분에 호텔신라 면세점은 세계 최초의 루이뷔통 입점 공항 면세점이 됐다. 이부진 사장은 이를 위해 4월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를 영접하러 직접 인천공항에 나가기도 했다, 그는 아르노 회장의 딸과도 친구인 것으로 알려졌다.
3일부터 경영의 전면에 나서게 된 삼성가() 3세들이 경영 능력을 완벽히 검증받았다고 보는 시각은 드물다. 아직 젊고, 밖으로 드러나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이들의 강점을 글로벌 인맥이라고 평가한다. 이번 인사에서 이들이 사장으로 승진한 요인 중 하나도 자칫 좌초될 뻔했던 사업들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오픈이노베이션과 글로벌 협력이 중요한 요즘의 경영환경에서 이들의 인맥과 글로벌 기업 경영자와의 친분 관계는 앞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2인자, 이재용
이번 삼성 사장단 인사에서는 이재용 이부진 사장의 전진 배치가 단연 두드러진다. 이재용 사장은 부사장 승진 1년 만에, 이부진 사장은 전무 승진 2년이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장이 됐다.
이재용 사장은 직급이 올라간 만큼 삼성전자 경영 전반에 관여하는 폭이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부사장 시절 맡았던 최고운영책임자(COOChief Operating Officer) 자리를 그대로 맡는다는 점은 조용히 물밑에서 움직이겠다는 뜻도 된다. 통상 COO는 최고경영자(CEO) 밑에서 회사의 일상적인 업무를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한 결정을 내리는 참모 성격이기 때문이다. 최지성 부회장에 이어 힘 있는 삼성전자의 2인자이기는 하지만 스포트라이트는 피하겠다는 뜻이 들어 있다.
이번만큼은 이재용 사장이 사업부를 맡거나 신사업을 추진하는 자리를 맡아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게 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안전하게 간 셈이다. 그러나 앞으로 삼성전자를 이끌 경영 후계자로서 삼성전자의 경영 전반을 들여다보기에는 COO보다 좋은 자리는 없다는 것이 삼성 안팎의 분석이다. 삼성 관계자는 이재용 사장이 글로벌 기업들과의 전략적 관계는 강화하고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부문의 선행 투자를 주도해왔으며 앞으로도 전략 사업의 경쟁우위와 신사업 기반을 구축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 서비스업 지휘, 이부진
이건희 회장의 장녀인 이부진 사장은 이번 인사로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 겸 삼성에버랜드 경영전략담당 사장 겸 삼성물산 상사부문 고문이라는 긴 직함을 갖게 됐다. 특히 전무에서 사장으로 두 계단이나 승진한 것은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삼성그룹 역사상 여성으로서 사장에 오른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 내부에서는 이부진 사장이 실질적인 삼성그룹의 지주회사인 삼성에버랜드의 사장직과 삼성그룹의 모태인 삼성물산 상사부문의 고문까지 겸하게 돼 역할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이부진 사장이 호텔신라에서 낸 경영성과가 이번 승진의 직접적인 발판이 됐다는 설명이다. 호텔신라는 이 사장 입사 이후 매출액이 2002년 4157억 원에서 지난해 1조2132억 원으로 세 배 가까이 늘어나는 고속 성장을 했다. 이번 인사로 이 사장은 호텔신라-삼성에버랜드-삼성물산으로 이어지는 삼성그룹 서비스업종 대표 계열사의 경영 전반을 맡게 된다. 삼성 관계자는 이부진 사장은 앞으로 호텔신라의 글로벌 일류화를 추진하고 삼성에버랜드와 삼성물산의 관련 사업 간 시너지를 제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의 차녀인 이서현 전무는 다음 주 임원 인사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가 3세들은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최지성 부회장과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의 김순택 부회장의 도움을 받으며 그룹 내에서 영향력과 실력을 쌓아갈 것으로 보인다.
김선우 김상운 sublime@donga.com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