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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고향 못돌아갈 것 뭍에서 새직업 알아보렵니다 (일)

다시 고향 못돌아갈 것 뭍에서 새직업 알아보렵니다 (일)

Posted November. 29, 2010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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뭍에서 뭘 할 수 있을까, 새로운 직업을 알아보고 있어요. 어민으로 연평도에서 30여 년 살아왔지만 악몽 같은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다시 연평도에 들어가 살지 못할 것 같아요.

28일 연평도 피란민 임시 거처인 인천 중구 인스파월드에서 만난 최율 전 연평도 주민자치위원장(53사진)은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연평도에서 5대째 살아온 그는 평생을 어민으로 생업을 꾸려온 연평도의 산증인.

1999년과 2002년 두 차례의 연평해전을 겪으면서도 고향 연평도를 그토록 사랑했던 그가 고향을 떠날 생각까지 할 만큼 이번 북한의 포격 도발이 준 충격은 컸다.

총알 100발이 터져도 꼼작 못하는데 폭탄 100발이 터졌다고 생각해 보세요. 북한군의 2차 포격 때 부두에서 차를 몰고 마을로 들어와 미처 피신하지 못한 주민들과 함께 대피소로 피신하고 있었죠. 그 뒤 불과 몇 초 뒤 30m 앞에서 쉬익 소리와 함께 섬광이 비치면서 포탄이 터졌어요. 고막이 찢기는 고통을 느꼈죠. 최 회장은 인천으로 피신한 뒤 다시 짐을 챙기러 연평도에 들어갔을 때 본 내 고향은 처참한 전쟁터였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이곳 임시 피란처에 있는 주민 상당수는 정부에서 다시 집을 고쳐 준다고 해도 연평도에 들어갈 엄두를 못 낼 것이라며 평생을 바다에서 생활해 담력과 배짱이 두둑하다고 자신했던 나도 바로 눈앞에서 포탄이 터지자 2시간 동안 아무 일도 못한 채 넋을 놓고 있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이곳 피신처에 있는 주민 절반 정도가 연평도에 되돌아가지 않을 것 같다며 향후 3, 4년 후 꽃게잡이 배도 크게 줄고 여객선 운항 횟수도 줄 것 같다고 전망했다

그는 찜질방에 누워 있는 주민들을 가리키며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모두 그날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차준호 run-ju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