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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전쟁 굴욕의 상징이 영웅으로 (일)

Posted October. 02, 2010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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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기자가 베이징()에서 3000km를 날아가 도착한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이닝(). 중국 북서 지역으로 오지 중의 오지다. 이곳은 바로 청나라 말 외세침략에 맞선 중화민족의 위대한 영웅으로 불리는 임칙서(17851850)가 사실상 유배된 곳이다.

청 왕조는 아편전쟁을 일으킨 영국군이 저장() 성과 상하이()를 거쳐 베이징 입구인 톈진()까지 압박해가자 1840년 9월 전쟁 유발 책임을 물어 그를 파직한 데 이어 다음해 7월 이곳으로 유배를 명했다. 그의 유배 길은 약 2만 리에 이르는 7900km. 외세에 무릎 꿇은 청 왕조만큼 수모와 굴욕의 길이었다.

168년이 지난 지금 임칙서가 유배된 이곳은 과거의 치욕을 잊지 말자며 중화민족주의를 고양하는 애국기지로 변모했다. 이날 이닝의 임칙서기념관에는 애국주의 교육기지 국방교육기지 등 7개의 팻말이 붙어 있었다. 기념관 관계자는 이곳은 시내 초중고교생이면 매년 한 차례 방문하는 곳이라며 지난해에만 11만 명이 다녀갔다고 설명했다. 인근 도시에서 온 고교생 량잉(17) 양은 역사수업 때 배웠지만 기념관에 와 사진과 유물을 다시 접하니 중화민족의 아픔이 새삼 다시 느껴진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임칙서는 이제 중국 전역은 물론 화교가 사는 해외에서도 영웅이다. 그의 기념관이나 동상은 아편전쟁 사적지인 광둥() 성 광저우(), 둥관(), 마카오는 물론 고향인 푸젠() 성 푸저우(), 심지어 해외인 미국 뉴욕에도 건립돼 있다.

같은 날 기자가 찾은 둥관 후먼() 진의 아편전쟁 및 임칙서기념관. 1990년 이후 2000만 명이 다녀간 곳이다. 입구 안쪽 왼편에 가로세로 약 50m의 연못이 2개 있다. 청나라 8대 황제 도광제()에게서 흠차대신(특정 사안 처리를 위해 황제의 특명을 받고 파견된 관리)으로 임명된 임칙서가 1839년 6월 영국 상인에게서 압수한 아편을 호수 물과 소금, 소석회를 이용해 용해시킨 뒤 바다로 흘려보낸 곳이다. 당시 압수한 아편은 무려 1188t으로 폐기에만 23일이 걸렸다. 다음해 6월 영국이 대규모 해군을 파견해 아편전쟁을 일으킨 단초가 된 사건이었다.

기념관은 현재 1년 반 일정으로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벌이고 있었다. 광저우 시는 다음 달 열리는 아시아경기대회를 앞두고 올해 7월 새로 조성한 공원을 임칙서 공원으로 명명했다. 이에 앞서 중국과학원은 1996년 6월 화성과 목성 사이에서 발견한 공전 주기 4.11년의 새로운 소행성을 임칙서 별로 이름 지었다. 아편전쟁 당시 영국 해군에 맞서 포를 쏘았던 후먼의 사자오() 웨이위안() 등의 포대()는 이제 유적지와 관광지로 바뀌었다.

서세동점()으로 몰락의 길을 걷던 청나라 말기의 영웅 임칙서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부르짖는 중국 굴기(굴)의 시대를 맞아 민족의 영웅으로 새롭게 추앙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인민을 병들게 하는 영국의 아편 수출에 맞서 분연히 일어섰다가 결국 좌절한 임칙서. 이날 기자가 바라본 그의 동상은 주장 강 위에서 160여 년 전의 아편 선박이 아니라 중국을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발돋움시킨, 끝없이 오가는 대형 무역선박을 자랑스러운 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구자룡 이헌진 bonhong@donga.com mungchi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