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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5일 싸워 5000명으로 4만2000명 막아 (일)

Posted March. 23, 2010 02:58,   

서부전선에서 육군 제1보병사단과 미국 기병사단, 영국 글로스터 부대 등이 무너지자 이승만 대통령이 크게 상심했어. 그래서 해병대가 투입됐지. 우리 해병 5000명이 중공군 4개 사단 4만2000명의 병력을 막아냈지. 매일 전투였어. 495일 동안 지겹게도 전투가 이어졌지.

625전쟁 당시 해병 제1전투단 부단장(중령)으로 활약한 공정식 전 해병대 사령관(사진)은 1952년 3월 17일부터 정전협정이 조인된 1953년 7월 27일까지 진행된 장단사천강 전투의 상황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휴전회담이 진행되던 1952년 3월 해병 제1연대는 미군 해병1사단과 함께 임진강 이북의 장단사천강 지구에 투입됐다. 1연대는 판문점 동북쪽의 고랑포 지구에 자리를 잡았다. 고랑포 지구는 동남쪽으론 임진강이, 서쪽으로는 사천강이 흐른다. 북고남저()의 지형으로 아군의 작전에 제한이 따르는 불리한 곳이었다.

당시 휴전회담에서는 각 부대가 자리 잡은 곳을 기준으로 군사분계선을 설정하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누가 고지를 차지하느냐에 따라 국경선이 달리 그어지는 형국이었다. 수도 서울로 통하는 장단(사천강) 지구에 대한 중공군의 공세는 집요했다.

전쟁 중에 나는 해군 함장에서 해병 지휘관으로 바뀌어서 미국 해병대로부터 강습()을 많이 받았지. 내 주변에는 미 해병대 장교 8명과 부사관 등 보병, 지상전, 전차, 함포, 포병 등 전문가들이 있어서 적절하게 지원해줬고 전시에는 밤에도 전술 토의를 했어.

해병 1연대도 전차중대, 공병중대 등을 보강해 전투단으로 재편성했다. 1952년 10월 중공군은 사천강변에 있는 전초기지를 손에 넣기 위해 공격을 감행하는 등 2개 사단을 동원해 4차례나 대규모 공세를 벌였다.

전투단장이던 김성은 대령은 인해전술을 펴는 중공군에 맞서 적군이 30100m 앞까지 오기를 기다렸어. 가까이 오면 한미 해병은 전차포까지 동원해 집중 포사격을 해댔지. 당시 우리는 미군 제3비행사단의 지원을 받아 제공권을 확보할 수 있었어. 그래서 적은 병력으로도 중공군을 막아냈고 새벽녘 전투가 끝날 때면 중공군 시신이 도처에 깔려 있었지.

1연대 전투단은 초기 중공군에 다소 밀렸으나 전차부대를 전진 배치하고 적의 접근로를 미리 파악하는 전술로 중공군의 공격을 저지해 서울을 사수했다. 이 전투에서 남측은 1개 대대 병력이 넘는 해병대원 776명이 목숨을 잃고 3212명이 다쳤다. 이들의 희생으로 조국 산하를 지킨 덕분에 군사분계선을 남측에 유리하게 설정할 수 있었다.



이유종 pe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