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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은 세일즈맨 똘똘한 교사 구해야 유능 (일)

교장은 세일즈맨 똘똘한 교사 구해야 유능 (일)

Posted December. 31, 2009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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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에 있다가 이번에 나가는 수학 선생님 참 잘해. 자네 학교 추천할 테니까 우리 영어 선생님 좀 추천해봐.

27일 오전 서울 시내 학교 교장, 장학관 5명이 서울대 정문 옆 관악산공원에 모였다. 이들은 사범대 동기생들. 지난해까지는 부부 동반으로 지방 또는 해외에서 골프를 치거나 온천을 즐겼지만 올해는 동기생끼리만 조촐하게 만났다. 학창 시절 이야기에서 시작해 가족들 안부, 지인 근황을 묻는 모습은 여느 대학 동기 모임과 다르지 않았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서로 피하는 눈치였다.

솔봉을 지날 때 한 교장이 먼저 운을 뗐다. 이번에 영어 선생님 새로 받아야 하는데 누가 괜찮아? 남들 말은 좀처럼 믿을 수가 있어야지. 동기가 말을 받았다. 맞아. 예전에는 교장들이 자기 밑에 있는 선생님들은 다 마음에 안 든다고 하더니 요즘엔 많이 달라졌어. 일단 그럴 듯하게 얘기해서 다른 학교에 보내자는 속셈인지.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옥석 가리기로 흘렀다. 그 친구는 수업은 잘하지만 좀 불성실하지 않아? 아니야. 부인이 몸이 좀 안 좋아서 그런 거라던데? 그럼 일단 한번 만나서 얘기 좀 해봐야겠군. 돌산에 오르자 멀리 강남 순환 도시고속도로 공사 현장이 보였다. 그런데 다들 강남만 가겠다고 하는 거 아냐?

내년 1학기부터 서울시내 일선학교 교장들은 전출입 교사 50%(전입 20%, 전출 30%)를 자기가 원하는 교사로 채울 수 있다. 예전에는 학교장이 마음에 드는 영어 수학 교사가 있어도 데려올 수 없었지만 내년부터는 가능하다. 스카우트 능력이 성패를 가른다.

하지만 유능한 교사는 교장들이 서로 놔주지 않으려 한다. 정보 부족도 문제다. 교사들 사이에 입소문이 돌지만 좋은 게 좋다는 생각에 서로 흠을 잡으려 하지 않는다. 믿을 만한 교장끼리 모여 정보를 나누는 수밖에 없다.

나 지난주에 목동 학원가에 다녀왔어. 애들한테 어떤 선생님이 잘 가르치는지 물어보려고 말이지. 애들이 사실 제일 믿을 만한 소스라니까. A 교장은 장학관 출신이라 사정이 낫다. 장학활동을 벌이면서 학교마다 눈여겨봐둔 교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학교 현장에서 곧바로 승진한 교장은 인맥 자체가 상대적으로 좁다.

교장이 모셔온 교사라고 특별대우를 할 수 없는 것도 고민거리. 사실 돈이라도 더 줄 수 있으면 좋겠어. 연구수당 더 챙겨주기도 힘들어. 결국 같이 일하기 괜찮은 교장이라는 평판을 쌓는 방법밖에 없는 건가? 분위기가 굳어지자 누군가가 농담을 던진다. 그러지 말고 그냥 내 밑에 와서 다시 수업하는 건 어때?

앞으로 교장들은 평판 관리뿐 아니라 자기 능력도 증명해야 한다. 내년부터 교사들이 교원평가를 받는 것처럼 서울지역 초중고교 교장도 평가를 받는다. 평가 결과 학교경영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난 교장은 평교사로 강등될 수도 있다.

학교 사정도 더는 비밀이 아니다. 올해 언론에서 학교별 수능 성적을 공개했고 내년에는 교육과학기술부에서 학교별 학업성취도평가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2013년부터는 학교선택제에 따른 지원 현황도 알 수 있게 된다.

어느새 산등성이에 눈이 쌓였다. 길이 미끄러워 모두들 조심스레 걸었다. 망월암에서 수목원 후문으로 내려오는 길에 안내문구가 붙어 있다. 첫 문장은 남에게 피해 주지 말자, 그 다음은 올라오는 사람에게 양보하자. 누군가가 농담을 건네려다 심각한 동기들 표정을 보고 그대로 멈춘다.

등산은 해넘이가 지나서야 끝났다. 안양예술공원 근처 찻집에서 몸을 녹였다. 왜 그 양산 교장 있잖아? 자기 아들 결혼식에 교사들 데려 가려고 단축수업한 양반 말이지? 맞아. 그런데 사실 우리가 평교사 때는 비슷한 일 적지 않았잖아? 그때 교장은 학교 제일 꼭대기에 군림하는 왕이었는데 지금 우리는 세일즈맨이 된 것 같아. 맞아. 보고 배운 대로 했다가는 큰일 나는 시대라니까.

찻집을 나서는 길, 누구도 술 한잔 하고 가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다음 날 오전 8시 반 동기 모두 자기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다. 전날 7시간 넘게 걸었지만 피곤해할 여유도 없다. 천근만근 무거운 다리를 주무르며 모두들 같은 생각을 했다.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황규인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