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친박만 있고 정책-전략은 없어

한나라당 원내대표 경선이 당 운영 비전이나 철학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 채 계파 간 갈등을 부추기는 구태()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원내대표 경선은 앞으로 1년 동안 국회에서 여당을 이끌어 갈 원내지도부를 선출하는 중요한 선거다. 하지만 정작 각 후보들이 정책 비전은 제대로 내놓지 못한 채 계파와 지역 안배 문제가 당락을 결정짓는 중요한 문제로 부상하고 있는 형편이다.

투표권을 갖고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도 정부와 함께 국정을 이끌어 갈 여당의 원내사령탑 후보자들이 어떤 비전을 제시하는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분위기다. 다만 주류인 친이(친이명박) 측과 비주류인 친박(친박근혜) 측을 어떻게 조합할 것인지, 수도권 후보와 영남권 후보를 어떻게 안배할 것인지가 판세를 결정짓는 변수로 떠오르고 있는 실정이다. 당 개혁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쇄신특위에서도 원내대표 경선이 계파 논리에 따라 좌우되는 현실에 대해서는 아무런 얘기를 못하고 있다. 쇄신특위가 각 계파를 대표하는 인사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원내대표 경선 과정에서 당내 갈등이 크게 불거진 것은 친박 성향인 최경환 의원이 정책위의장 출마 의사를 밝힌 것이 계기가 됐다. 이상득 의원과 박희태 대표가 최 의원 카드를 밀어붙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얘기가 당내에서 나돌았다. 이 같은 구상은 429 재보선 참패에 따른 지도부 퇴진론을 차단하기 위해 화합형 원내지도부를 구성하려 했던 두 사람의 생각에 따른 것이라는 게 당내의 관측이다. 두 사람은 당초 김무성 원내대표 합의 추대 카드를 추진하려고 했지만 박근혜 전 대표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무산되자 이번에는 최경환 정책위의장 카드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최 의원과 짝을 이뤄 원내대표에 출마한 황우여 의원의 경선 캠프에 이상득 의원과 가까운 의원 7, 8명이 참여하고 있는 것도 SD(이 의원의 영문 이니셜) 개입의 징후라고 얘기하는 의원들이 적지 않다. 최 의원은 이 의원의 강한 권유가 있었다고 주변에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최 의원은 이날 회견에서 출마를 결심한 배경에 대해 (이 의원 개입설은) 사실무근이다. 당을 위한 순수한 충정으로 출마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박희태 대표도 나는 김무성 카드가 불발된 이후 원내대표 경선 문제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을 방문 중인 이 의원은 이날 나는 확실히 엄정 중립이다. 경선에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측근을 통해 밝혔다. 이 의원은 전날 보이지 않는 손 논란을 제기한 안상수 의원에게도 전화를 걸어 중립을 지키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 의원이 당분간 당내 문제에 관여하지 않고 대외적인 관계에만 전념하겠다는 뜻을 주변에 밝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박정훈 sunshad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