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친박(친박근혜)이라는 분들이 당이 하는 일에 발목을 잡은 게 뭐가 있는지 생각을 해 보세요. 친박 때문에 당이 잘 안되고 있다, 선거에서 떨어졌다는 게 말이 됩니까?
미국을 방문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9일(이하 현지 시간) 당내 화합책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갈등이 뭐가 있느냐, 무슨 화합을 해야 하느냐면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429 재보궐선거 이후 증폭되고 있는 당내 계파 갈등 문제에 대해 친이(친이명박)계에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샌프란시스코 시내 한 식당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제가 당 대표를 할 때도 주류와 비주류는 분명히 있었다. 항상 있는 것을 두고 새삼스럽게 갈등이 있는 것처럼 하는 것은 전제가 잘못됐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박 전 대표의 발언은 재보선의 패인으로 친이친박 계파 갈등 문제와 친박계의 비협조를 거론하는 것에 대한 불쾌한 속내를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친박계에서 먼저 갈등을 일으켰어야 화합책도 필요한데 당내 비주류로 조용한 행보를 해온 자신에게 왜 책임을 떠넘기냐는 항변이다.
박 전 대표는 또 재보선 참패 원인에 대해 당 쇄신특위 활동을 언급하며 제가 당 대표 때 다 실천했던 일인데 그게 다시 쇄신책으로 나왔다는 것은 한 마디로 지금 안 지켜지고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당 지도부를 비롯한 주류에 책임을 물은 것으로 김무성 원내대표 카드에 반대하면서 당이 잘해서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고 비판한 것과 맞닿아 있다. 그는 이어 한나라당은 공당()이라며 공천은 당헌당규에 따른 원칙에 맞게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공당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11일 귀국 후 박희태 대표와 만날 것이냐는 질문에는 (박 대표가 나를) 만나겠다고 하면 안 만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무성 의원의 원내대표 추대나 경선에는 이미 제 견해를 밝혔기 때문에 덧붙일 말이 없다며 분명한 선을 그었다. 결국 원내대표나 정책위의장이 친박 몫으로 돌아간다 해도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들린다. 박 전 대표의 이날 발언으로 한나라당은 앞으로 적지 않은 소용돌이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표의 위력은 이번 파문으로 재확인됐다고 볼 수 있다. 박 전 대표는 방미 기간 김무성 원내대표 카드가 나오자 국내 정치는 왜 매일 그래요? 하기는 언제 안 그럴 때가 있었나요라고 반문하기도 했다고 동행한 한 의원은 전했다.
박 전 대표는 9일 동행한 기자들에게 원칙이 가져오는 최고 가치 창출은 신뢰라면서 믿을 수 있으면 비용이 많이 들지 않지만 신뢰가 없으면 정책도 말도 믿을 수가 없어 비용이 든다고 원칙론을 거듭 강조했다.
8일 샌프란시스코 시청에서 열린 교민 간담회에서는 성심여고 동창생인 장용희 씨가 환영사에 나서 박 전 대표의 원칙론에 대한 에피소드를 소개하기도 했다. 장 씨는 국어 시간에 처음 한두 번만 숙제검사를 했고 이후엔 검사를 안했다면서 어느 날 하루 선생님이 공책 검사를 했는데 같은 반 30명 학생 가운데 유일하게 박 전 대표만 숙제를 했다고 소개했다. 검사를 하든 말든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는 자세, 누가 보든 안 보든 의무에 충실한 원칙을 그때부터 지켰다는 것이다.
홍수영 ga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