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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막후정치에 능한 군주였다

Posted February. 10, 2009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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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22대 왕 정조(17521800년)가 신하와의 비밀스런 의견 조율을 통한 막후정치에 공을 들였음을 보여주는 정조의 어찰(왕의 편지)첩이 나왔다. 이 어찰첩에 따르면 정조가 독살됐을지 모른다는 일부의 의혹도 허구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과 고전번역원은 9일 기자회견을 갖고 정조가 우의정을 지낸 심환지(17301802년)에게 보낸 어찰첩()을 공개했다. 이날 학술회의에서는 지난 1년간 어찰을 분석한 결과를 밝혔다. 심환지는 정조에게 대립각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진 노론 벽파의 중심 인물이다.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 이 어찰첩은 모두 6첩으로 정조가 1796년 8월 20일부터 사망하기 13일 전인 1800년 6월 15일까지 직접 쓴 편지 299통이 담겨있다. 신하들에 대한 평가, 여론 동향에 대한 관심, 인사()에 대한 의견 교환, 비밀스런 지시 등이 담겨 있다. 이 어찰을 지닌 소장자는 실명이 밝혀지는 것을 꺼렸다.

정조는 이 편지에서 서영보를 가리켜 염량세태(무상한 세상인심)만 볼 뿐이라며 호로자식()라고 욕하기도 했으며, 입에 맞는 떡같은 속담이나 사안의 무게를 덜기 위해 껄껄()이라는 의성어를 구사하기도 했다.

정조는 어전회의에서 어떤 말을 주고받을지에 대해 심환지와 미리 말을 맞추려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특히 정조가 말년의 병세를 심환지에게 상세히 알린 편지에서는 독살을 당했다는 일부의 의혹과 달리 화병으로 타계했음을 알 수 있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공식 기록에선 보기 힘든 정조의 인간적인 측면과 비밀 편지를 활용한 막후정치의 모습이 드러난다고 말했다.

김문식 단국대 교수는 심환지가 정조를 독살했다는 설이 있는 것에 대해 정조가 말년에 여러 통의 편지를 통해 아프다는 사실을 심환지에게 알렸는데 만약 심환지를 의심했다면 그런 사실을 밝히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편지 내용으로 미뤄 보면 독살 보다는 병으로 자연 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번 어찰첩의 내용은 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같은 공식 사료에 기록되지 않은 내용이 대부분이다.



금동근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