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의 미국

미국 뉴올리언스 외곽에 마련된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주민 캠프에서는 문명국 미국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3일 오전 1시 40분. 대부분 흑인인 주민 2000여 명은 왕복 10차로 고속도로 위에 쓰레기 더미와 뒤섞여 누워 있었다. 구호식량을 먹고 내버린 음식 쓰레기에서 올라오는 쉰 막걸리 냄새가 코를 찔렀다.

주민 대부분은 간이침대나 궤짝, 종이상자를 아스팔트에 깔고 잠을 청하고 있었다. 깜깜한 밤을 밝히는 대형 조명 7, 8개와 발전기의 굉음 탓에 애초부터 안면()은 불가능했다.

오전 3시. 잠을 못 이루는 주민들이 낯선 동양의 기자를 붙들고 음모론을 끄집어냈다. 제방을 붕괴시킨 것은 허리케인이 아니며, 백인들이 일부러 폭파시켰다는 것이다.

한 흑인 남성은 친구 2명이 다이너마이트 폭발음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의 여자친구인 요리사 티나 헤스턴(43) 씨는 난 진절머리가 난다. 뉴올리언스를 떠날 것이다. 하지만 수사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거들었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근거가 뭐냐는 질문에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오전 3시 45분. 2시간 넘게 현장 곳곳을 돌아다니는 동안 끊임없이 발에 걸리는 쓰레기를 바라보면서 왜 닷새째가 됐는데도 쓰레기가 치워지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흑인 주민들의 평소 생활습관 때문일까, 아니면 이재민 캠프의 관리책임을 맡은 백인 관리의 무신경 때문일까. 이런 장면이 TV에 나온다면 흑인에 대한 편견이 되살아날지도 모를 일이다.

세 아이를 둔 마이라 씨는 빗자루를 좀 달라고 했지만 그것도 안 준다. 뒷짐 지고 서 있는 저들은 우리의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은 안중에도 없다고 했다. 곧 떠날 텐데 왜 우리가 치우냐라는 흑인 남성도 있었다.

오전 5시. 예정된 시간을 4시간이나 넘겨 비상 캠프용 버스 12대가 도착했다. 1대에 정원이 40명이면 500명 안팎이 냉방시설이 된 안식처를 갖게 될 것이다.

주민들이 버스 앞으로 몰렸다. 모두가 무기력해진 탓인지 생각보다 몸싸움은 적었다. 하지만 누가 어떤 기준에 따라 먼저 타게 되는지에 대한 원칙은 애초부터 없었고, 또 어디로 이동하는지를 알려주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경찰관 스콧 코코스 씨는 그게. 잘 모르겠다며 난처해했다. 한 흑인 여성은 당국이 하는 일은 틀려먹었다며 악을 썼다.

오전 6시. 멀리서 동이 터 왔다. 하지만 수용소의 새벽에는 희망이 읽히지 않았다.

뉴욕타임스 모린 다우드 칼럼니스트는 3일자에서 미국을 수치심 합중국(The United States of Shame)이라고 묘사했다.

이재민이 쓰레기가 돼 널브러져 있던 고속도로 변의 수용소와 루이 암스트롱의 애조 띤 트럼펫 소리가 더 이상 울리지 않는 재즈의 도시의 참상이 겹쳐 떠올랐다.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