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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백 좀 열어보시라요 현정은회장 북에서 봉변

핸드백 좀 열어보시라요 현정은회장 북에서 봉변

Posted September. 03, 200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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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날.

주인공인 현대그룹 현정은(50) 회장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그는 지금 시아버지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남편인 고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뜻을 이어받아 대북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핸드백 열어보시라요

지난달 31일 오전 7시반 북측 출입국사무소. 현 회장은 생각지도 못한 봉변(?)을 당했다.

오전 10시로 예정된 금강산 온정각 면회소 착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부터 서둘러 왔지만 북측의 응대는 쌀쌀하기만 했다.

북측은 현 회장에 대해 일반 관광객보다 더 까다로운 입북 심사를 했다. 현대그룹 간부들은 당황했다.

지금까지 금강산을 지켜낸 사람이 누구인데.

하지만 누구도 북측의 용납하기 어려운 처사를 막을 수 없었다.

북측 출입국사무소 직원은 현 회장에게 핸드백까지 열라고 요구했다. 수차례 북한을 드나들었지만 처음 있는 일이다. 현 회장을 수행했던 현대아산의 한 임원은 북측의 거부로 아예 북한 땅에 발을 들여놓지도 못했다.

행사에 참석한 한 인사는 김윤규() 현대아산 부회장을 내친 데 대한 북한의 앙갚음처럼 보였다고 귀띔했다.

에쿠스 밀담

금강산 면회소 착공식 행사에서도 현 회장에 대한 북측의 냉대는 계속됐다.

현 회장의 자리는 맨 앞줄 15명 가운데 왼쪽부터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 이지송() 현대건설 사장에 이어 세 번째에 배치됐다. 대북사업을 하는 현대그룹의 총사령탑인데도.

발파 행사와 기념 삽질까지 끝낸 현 회장은 숙소인 금강산호텔로 가려고 했으나 북한적십자회 장재언() 중앙위원장이 길을 막아섰다.

기자들이 다가가자 두 사람은 현 회장의 에쿠스 승용차를 타고 200m 떨어진 용천마을 입구까지 갔다. 차 안에서 10여 분 동안 예정에 없던 밀담()이 이어졌다.

두 사람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뭔가 사정이 급박하게 돌아간다는 느낌을 줬을 뿐이다. 현 회장은 차 안에서 무슨 얘기를 나눴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할말이 없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남편 유골 뿌려진 신계사 찾아

지난달 31일 밤. 현 회장은 금강산호텔 12층 하늘라운지(스카이라운지)에서 최용묵(현대그룹 구조조정본부장) 현대엘리베이터 사장 등 그룹 주요 간부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술을 못하는 그는 얼음 몇 개를 띄운 물잔을 들었다. 참모들은 현 회장이 아랫사람들에게 덕장()보다 더 좋은 복장()이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이날 오전 현 회장이 겪은 일 때문에 모두 씁쓰레하는 분위기였다.

1일 아침. 추적추적 내리는 늦여름 비가 금강산을 적셨다.

현 회장의 차는 일찍 금강산 신계사로 향했다. 남편의 유해를 뿌린 곳이다. 이곳에서 현 회장은 남편에게 물었을지도 모른다.

여보,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나요.

답답한 마음을 하늘이 알았을까. 오전 11시부터 열린 제2온정각 개관식 때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행사장 옆엔 도올 김용옥()이 쓴 정몽헌 회장 추모비가 서 있었다.

귀경길에 만난 현대 고위 관계자는 회사 경영권을 놓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북측의 태도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며 답답해 했다.



최영해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