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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통역들

Posted July. 02, 2005 06:10,   

日本語

박진이, 니 통역 잘하그래이.

1993년 7월 한국을 방문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조깅을 마친 김영삼() 대통령은 청와대 녹지원에서 클린턴 대통령에게 선물로 줄 친필 휘호를 써내려간 뒤 이렇게 말했다. 휘호를 본 박진(현 한나라당 국회의원) 당시 해외공보비서관은 당황했다.

대도무문().

정도를 걸으면 거리낄 것이 없다는 이 말을 박 비서관은 먼저 Righteousness overcomes all obstacles(정의로움은 모든 장애물을 극복한다)라고 의역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A high street has no main gate(큰 길에는 문이 없다)라고 직역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더욱 난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다시 A freeway has no tollgate(고속도로에는 요금정산소가 없다)라고 미국식으로 설명했다. 그때서야 클린턴 대통령이 이해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박장대소했다.

미국 국무부에서 30년 가까이 역대 미국 대통령, 또 북-미 접촉 시 한국어 통역을 담당했던 김동현(미국명 통 킴69) 씨가 최근 은퇴하면서 대통령의 통역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대통령의 통역은 피 말리는 직업이다. 겉보기엔 화려하지만 말 하나, 토씨 하나 잘못 전달했다간 국가 대사()가 틀어질 수 있다. 때로는 대통령의 잘못까지 잡아주는 대화 조율사의 역까지 맡아야 한다.

지난해 7월 제주도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 노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다케시마(독도의 일본명)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일본 기자의 질문에 순간적으로 다케시마 문제는하고 말을 이어갔다. 그러자 한국 측 통역이 이를 독도 몬다이와(독도 문제는)로 바로잡는 기지를 발휘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브라질을 방문한 노 대통령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실바 대통령과 만찬을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브라질 농산부 장관이 한국이 농산물 개방을 안 하니까 값이 10배가량 비싸다고 수입개방을 요구했고 노 대통령은 다 제 값을 하는 거겠죠라고 애매하게 받아넘겼다. 이를 통역이 외국 농산물은 질이 떨어진다는 취지로 전달하는 바람에 룰라 대통령이 무슨 소린가 하고 바짝 긴장하는 표정을 지은 적도 있다.



윤영찬 정용관 yyc11@donga.com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