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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파노라마에 숨조차 멎을 듯

Posted December. 23, 2004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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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여행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눈꽃이 활짝 핀 겨울 산행이 아닐까. 밤새 내린 눈이 소복하게 쌓여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은 모습을 보면 날씨는 추워도 마음이 포근해진다.

요즘처럼 공해에 찌든 도심에서는 그런 순백의 아름다움이 더욱 그리워진다. 게다가 서울에서는 이상난동 때문에 지난 달 첫눈 소식 이후 눈 구경하기가 힘들다.

무주구천동을 품고 있는 덕유산은 겨울산의 진수로 알려져 있다.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는 곳으로 스키장을 끼고 있는데다 정상에는 벌써 새하얀 서리꽃, 눈꽃이 화려하게 피어있다. 덕유산 눈꽃 트레킹 코스에 오르며 눈을 기다리는 성급한 마음을 달래 보자.

상고대가 연출하는 순백의 미

덕이 많고 너그러운 모산이라 하여 이름 붙여진 덕유산. 경상남도 거창군과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설천면에 걸쳐 있는 덕유산은 주봉우리인 향적봉(1614m)을 중심으로 대봉, 중봉, 삿갓봉 등 해발고도 1300m 안팎의 봉우리들이 줄지어 솟아 있어 장관을 이룬다.

덕유산 안에는 계곡이 8개나 있다. 이중 북동쪽 무주와 무풍 사이를 흘러 금강의 지류인 남대천으로 이르는 길이 30km의 무주구천동은 전국적으로 알려진 명소. 9000굽이를 헤아린다는 계곡 안에 무이구곡을 비롯, 구월담, 수심대, 학소대 등 구천동 33경과 칠련폭포, 용추폭포 등이 살포시 들어앉아 있다.

덕유산 정상부에 있는 백련사는 구천동 골짜기에 있는 유일한 사찰. 절 입구의 아치형 다리를 건너 일주문을 지나면 백팔번뇌를 상징하는 108개의 석조계단이 가지런히 뻗어있다. 계단을 올라서면 대웅전을 비롯해 크고 작은 건물들이 들어서 고즈넉한 경내가 펼쳐진다.

덕유산은 겨울 내내 상고대가 피어 있어 눈이 오지 않더라도 때 묻지 않은 순백의 미를 언제든지 감상할 수 있다. 상고대는 습기를 머금은 구름과 안개가 급격한 추위로 나무에 엉겨 붙어 만들어진 서리꽃을 말한다. 서리꽃은 해발 1000m 이상 고지에서 영하 6도 이하, 습도 90% 이상일 때만 핀다. 밑으로 금강 줄기가 흐르는 덕유산은 이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고 다른 곳에 비해 유난히 눈도 많이 내린다.

곤돌라로 오르는 정상

아무리 설경이 아름답다지만 눈길을 헤치며 1600m가 넘는 덕유산 정상을 오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등산하기가 버겁다면 무주리조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오를 수도 있다.

곤돌라를 타고 오르는 길은 향적봉 바로 밑에 있는 설천봉(1530m)까지. 특히 산 중턱에 눈구름이 깔린 날 곤돌라를 타면 그야말로 구름 위에서 산책하는 느낌이다. 설천봉 정상에 가까워올수록 눈꽃이 활짝 핀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양새를 보면 나무라기보다 새하얀 산호초 같다. 마치 잠수함을 타고 바다 속을 헤집고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어디 그뿐이랴. 곤돌라를 타고 가면 등산하면서는 보기 힘들었던 나무의 머리 꼭대기가 색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똑같은 산이지만 걸어서 올라가는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힘들여 걷는 것과 달리 겨울산의 하얀 속살을 여유 있게 감상하며 올라가는 맛이 아주 이채롭다. 곤돌라를 타고 설천봉에 이르면 또 하나의 장관이 기다리고 있다. 곤돌라 승강장 밖으로 걸음을 내딛는 순간 온천지가 구름에 덮여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구름을 뚫고 걷다 어렴풋이 전망대가 보이면 용궁인지 천궁인지 알 수 없는 별세계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겹겹이 펼쳐진 새하얀 능선

이곳에서 향적봉까지 오르는 시간은 쉬엄쉬엄 걸어 20분. 눈꽃 터널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 사이로 걸어가는 맛이 기가 막히다. 향적봉 정상에서 천하를 내려다보는 것 또한 잊을 수가 없다. 지리산 천왕봉과 반야봉을 비롯해 속리산 줄기까지 겹겹이 펼쳐진 산의 능선들이 한눈에 들어오자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은 그 느낌. 이 순간만큼은 세상의 온갖 시름을 잊게 된다.

덕유산 정상의 진수를 맛본 후에는 걸어 내려오면서 등산길의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좋다. 향적봉에서 구천동까지 내려오는 데 3시간 정도. 향적봉에서 백련사를 거쳐 무주구천동으로 내려오는 코스가 가장 짧지만 백련사까지 내려오는 길이 다소 가파르다. 반면 중봉 쪽은 40분 정도 더 걸리지만 완만한 능선을 따라 늘어선 키 작은 나무의 눈꽃을 감상할 수 있다. 무주리조트 063-322-9000

1월 중에는 매주 수, 일요일 서울역에서 기차로 출발하는 덕유산 눈꽃 트레킹 당일치기 여행상품도 있다. 곤돌라 이용료 등을 포함한 참가비 5만2000원. 우리여행사 02-733-0882 글=최미선 여행플래너

tigerlion007@hanmail.net

사진=신석교 프리랜서 사진작가

rainstorm495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