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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둘, 이제야 골프에 눈떴다

Posted December. 06, 2004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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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변한 스폰서도 없다. 우승? 그런 건 꿈도 못 꿔봤다.

계속되는 컷오프 탈락과 지겨운 모텔 생활. 그래도 행복하단다. 이제 새롭게 골프에 눈을 뜨게 됐다는 게 그의 말이다.

6일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퀄리파잉스쿨에서 공동 12위(1언더파 359타)로 내년 시즌 출전권을 다시 따낸 정일미(32).

서른이 넘은 나이에 올해 뒤늦게 LPGA 투어에 데뷔했으나 상금랭킹 90위 안에 들지 못하는 바람에 퀄리파잉스쿨에 나가야 했던 그는 6일 전화인터뷰에서 떨어질까 봐 맘 편하게 골프를 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1년간 미국 투어 생활을 했던 게 도움이 돼 합격할 수 있었다며 기뻐했다.

정일미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에서 2년 연속 상금왕(19992000년)을 차지하는 등 개인통산 8승을 거둔 국내 여자 톱 골퍼. 하지만 그는 큰 무대에서 뛰기 위해 편한 길을 놔두고 고생길을 택했다.

지난해 LPGA 퀄리파잉스쿨에서 공동 17위를 차지해 2004년 풀시드를 받은 정일미. 별천지 세상이 펼쳐지는 듯했으나 현실은 냉혹했다. 정일미에게 올해 성적을 물어보자 그는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기록을 찾아봤다. 23차례 대회에 출전해 컷오프 탈락이 무려 18번이었고 톱10 진입은 단 한번도 없었다. 최고 성적이 10월 열린 아사히 료쿠겐 인터내셔널챔피언십에서의 공동 42위(이븐파).

상금랭킹이 193명 중 152위인 그가 1년 내내 번 돈은 고작 1만4648달러(약 1500만 원). 2003년 국내에서 벌어들인 상금(4323만 원)보다도 못했다.

사정이 이러니 버는 것보다 쓰는 게 훨씬 많다. 전속 캐디는 둘 수가 없고 로드매니저와 함께 경비를 아끼기 위해 싼 숙소를 찾아다닌다. 정일미는 입맛에 맞지 않는 식사는 참을 만했지만 짧은 영어 때문에 의사소통이 잘 안돼 답답한 것 하고 대회 끝나면 이동하는 게 가장 힘들다고 했다.

기술적으로 실패한 원인을 묻자 그는 잔디 적응을 제대로 못한 점을 들었다. 버뮤다 그래스, 켄터키 블루 그래스, 벤트 그래스 등 경기장마다 잔디가 전부 달랐죠. 코스 세팅도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어요.

미국으로 건너간 한국 선수 가운데 맏언니인 정일미는 자존심에 적지 않게 상처를 받았다. 시즌이 끝났지만 이대로는 한국에 못 간다며 겨울훈련을 미국에서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부모님은 시집가라고 하지만 남자는 관심도 없다.

남들은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 그래도 미국 오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여기 와서 새롭게 골프를 배워가고 있거든요. 시간이 문제지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봐요.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게 중요하잖아요.



김상수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