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대통령이 취임했는데도 전임 대통령은 나는 여전히 대통령이라고 흰소리를 치며 대통령궁을 떠나지 않고 있단다. 인도네시아 얘기다. 외신으로 접할 수밖에 없는 먼 나라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일은 아니지만 보기에 딱하다. 어차피 뻗댈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면 훌훌 털고 일어서는 편이 나으련만 예나 지금이나, 여기나 저기나 권력에 대한 집착은 마찬가지인가 보다.
권좌에서 밀려나게 된 압두라만 와히드 전대통령은 2년 전 대통령에 선출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슬람 종교지도자로서 국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인물이었다고 한다. 1993년에 농민과 중소기업인을 위해 일한 공로로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하기도 한 그는 특히 서민층의 지지가 높았다고 한다. 그런 그가 몰락하게 된 결정적 요인이 공금횡령과 기부금 착복 혐의라고 하니 꼭 집어 우리네와 비교하기는 뭣해도 뒷맛이 영 씁쓸하다.
필리핀의 조지프 에스트라다 전대통령은 요즘 군병원에 구금된 채 재판을 받고 있는 신세다. 그는 최고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고 보석은 허용되지 않는 횡령과 부패 등의 혐의로 올 4월 구속됐다. 필리핀의 역대 지도자와는 달리 슬럼가에서 태어나 한때 영화배우로 인기를 끌었던 그는 빈민층의 절대적인 지지에 힘입어 대통령에까지 올랐지만 결국 부패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전형적인 포퓰리즘(대중인기주의)의 실패작인 셈이다.
그뿐인가. 경제회복의 주역으로 찬양받던 카를로스 메넴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여당 정치인과 정부 관리들의 부패에 빈부 격차가 겹치면서 2년 전 야당에 정권을 넘겨준 데 이어 얼마 전에는 그 자신이 무기 밀매혐의로 기소됐다. 부패 스캔들이 폭로되자 지난해 10월 일본으로 도피한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페루 대통령은 일본 정부가 페루 정부의 거듭되는 신병 인도 요구에 굴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해야 하는 처지다. 부패는 국가를 몰락으로 이끄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다. 19세기 후반 영국의 명()재상이던 윌리엄 글래드스턴이 한 말이다. 지금 이 나라에도 이 경구()에 뜨끔할 양반들이 있을 터이다.
전진우 youngji@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