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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수는’ 정책에 찬밥 된 ‘고치는’ 정책

‘부수는’ 정책에 찬밥 된 ‘고치는’ 정책

Posted March. 05, 2024 08:39,   

Updated March. 05, 2024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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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에서 좋다고 소문난 한 테마파크는 입장권을 선착순으로 팔았다. 새벽부터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길게 줄을 서 있곤 했다. 기다리다 지쳐 집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인근의 다른 놀이동산으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어느 날 이 테마파크가 입장권을 대규모로 팔면서 동시 입장이 가능하도록 문을 활짝 열었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다른 놀이동산은 파리가 날렸다. 테파마크에 입성한 사람들 앞엔 꿈과 희망이 펼쳐졌을까.

입장권을 무제한 제공하듯 올해 들어 정부는 재건축·재개발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준공 후 30년이 넘으면 안전진단 없이도 재건축에 착수할 수 있게 했다. 노후도시 정비 대상 지역을 당초 1기 신도시 등 51곳에서 전국 108곳, 215만 채로 늘렸다. 선도지구 지정, 용적률 상향 등의 당근도 약속했다. 그동안 재건축이 힘들던 아파트들도 ‘우리 아파트도 혹시’ 하며 희망을 갖게 됐다.

하지만 테마파크 안으로 들어서면 곧바로 냉혹한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인기 있는 놀이기구는 줄이 엄청나게 길다. 패스트트랙으로 빨리 타려면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 그동안 안전진단 등의 문턱에 걸려 후순위로 밀렸던 단지들까지 한꺼번에 쏟아지면 우선순위는 철저하게 사업성에 따라 갈리게 된다. 더 시급한, 더 오래 기다려온 단지가 뒤로 밀릴 수 있다. 사실 지금 재건축 사업이 부진한 건 안전진단이 아니라 건설 경기 부진과 공사비 상승 등에 따른 사업성 악화 때문이다.

나중에야 어떻게 되든 처음 사업을 준비하는 입장에선 정부의 당근은 매력적이다. 재건축 외에 다른 정비사업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대표적으로 찬밥신세가 된 게 리모델링이다. 기존 아파트를 완전히 철거하는 재건축과 달리 뼈대를 유지한 채 고쳐 짓는 방식이다. 재건축·재개발 규제가 강했던 지난 정부에선 대안으로 주목받았지만 재건축을 밀어 주는 현 정부 들어서는 관심 밖으로 사라졌다. 리모델링을 추진하다 좌초된 곳도 있고, 기존 리모델링 조합과 새로 들어선 재건축추진위원회로 갈려 갈등을 빚는 단지도 많아졌다.

리모델링에 결정적 타격을 준 것은 지난해 7월 국토교통부와 법제처의 유권해석이었다. 기존에는 1층을 필로티 구조로 바꾸고 최상층을 한 개층 올릴 경우 수평증축으로 판단했는데, 수직증축에 해당한다고 해석을 바꾼 것이다. 1차 안전진단으로 끝나는 수평증축과 달리 수직증축은 2차 안전진단을 거쳐야 해 비용과 시간이 더 든다. 1층을 필로티로 하고 구조보강을 하면 오히려 안전하다는 게 구조기술업계의 판단이지만 정부는 과학적, 기술적 검증보다 법령의 문언적 해석에 주력했다.

아파트 리모델링은 2001년 건축법 시행령에서 처음 개념이 반영됐고, 2003년 주택법 개정으로 제도화됐다. 멀쩡한 콘크리트 건물도 부수는 무분별한 재건축 추진을 막기 위한 대안으로 도입됐다. 하지만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리모델링 제도와 규제는 크게 변한 것이 없다. 그동안 건설 기술이 크게 발전했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며 리모델링 활성화에 미온적이었다.

수요자 입장에서 같은 조건이면 완전히 새로 짓는 재건축이 훨씬 유리하다. 하지만 모든 아파트를 재건축하는 건 사실상 힘들다. 지난해 서울시는 시내 공동주택 4217개 단지 중 3087개는 재건축은 어렵고 리모델링만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정부 정책에 따라 재건축과 리모델링 사이에서 핑퐁게임을 할 것이 아니라 균형이 필요하다. 단지의 여건에 따라 정비방식을 합리적으로 고를 수 있도록 선택지를 넓혀야 한다. 지금처럼 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재건축 입장 티켓을 흔들며 호객행위를 한다면 헛된 기대감만 심어줘 정비사업 전반을 왜곡시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