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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북한 카터 대동강 오리알 되나

Posted August. 27, 2010 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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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급거 중국 방문길에 오른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행보에 가장 당황스러워 했을 사람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일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알려진 카터 전 대통령의 평양 일정은 25일 오후 순안공항에 도착한 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의 면담 및 만찬 참석이다. 북한의 6자회담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카터 전 대통령을 공항에서 영접한 뒤 백화원 초대소에서 열린 만찬에 배석했다.

북한의 관영 언론이 전한 카터 전 대통령의 방미 행보에 따르면 카터 전 대통령은 김 국방위원장을 면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의 접경지역을 통과하는 특별열차를 주로 이용하는 김 위원장의 이전 방중루트에 비춰볼 때 북한으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일주일 가까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카터 전 대통령이 이번 방북 기간 김 위원장을 만나기는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억류 중인 미국인 아이잘론 말리 곰즈 씨를 귀환시키는 것이 공식임무였지만 북한을 다시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고 김 위원장과의 면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문제를 다뤄보겠다는 원대한 꿈을 갖고 방북한 카터 전 대통령으로서는 허탈해지는 대목이다. 곰즈 씨 석방은 사실상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 이전에 이미 성사된 거래였다는 점에서 자칫하면 빈손으로 돌아온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을 중재했던 박한식 조지아대 교수는 25일 카터 전 대통령은 천안함 사태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던 시점부터 방북을 추진했고 김 위원장과의 면담을 전제조건으로 평양행 길에 올랐다고 말해 김 위원장 면담을 기정사실화했다.

카터 전 대통령의 면담 불발이 사실이라면 개인자격으로 인도주의적 목적을 위한 방북이라는 점을 누차 강조했던 버락 오바마 행정부도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달 말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와 관련한 행정명령 발표를 앞둔 시점임에도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을 허가해준 터라 김 위원장의 예상 밖 파격행보가 떨떠름할 수밖에 없는 것.

물론 카터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이미 만났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김 위원장의 방중이 비밀리에 전격적으로 이뤄졌으며 그의 행보를 전하는 것은 전적으로 북한 지도부의 뜻에 달린 것인 만큼 방북 첫날 카터 전 대통령과 만나 북-미 관계와 남북관계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을 수도 있다. 또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전직 미 대통령에 대한 예우차원에서 넌지시 김 위원장의 방중을 귀띔해주고 모종의 메시지를 전달했을 가능성도 있다.

복잡하게 진행되고 있는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 행보는 결국 그가 미국으로 다시 돌아오는 26일(현지 시간) 이후에야 속 시원히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하태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