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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거짓말 권하는 사회

Posted August. 07, 2002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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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이 거짓말을 잘한다는 기록은 구한말 조선을 다녀간 외국인 선교사들의 견문록에 자주 등장한다. 1920년대 소설가 이광수는 민족개조론을 내세우면서 조선인의 단점을 여러 개 꼽았는데 그 중 하나가 거짓말이었다. 오늘날에도 거짓말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거짓말이 만연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지만 그 배경을 우리 민족성 탓으로 보는 시각에는 찬성할 수 없다.

거짓말 잘하는 민족이라는 표현은 서양인 선교사들이 한국사람들을 깔보면서 자신들이 교화시켜야 할 대상임을 강조하는 오리엔탈리즘적 발상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옛 농촌의 순수하고 넉넉했던 인심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나 명분과 도덕성을 위해 목숨마저 내놓았던 옛 선비들의 기개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 이광수의 민족개조론도 결과적으로 일제의 식민지지배를 정당화하는 데 일조했다.

인간이 완벽한 존재가 아닌 이상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도 거짓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뽐내는 미국 만해도 그렇다. 최근 미국발() 경제불안의 발단이 된 미국 기업들의 회계부정도 거짓말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며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나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각각 르윈스키 스캔들과 워터게이트에서 벗어나기 위해 거짓말을 서슴지 않았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물론 국가와 지역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거짓말의 출발점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마음 속에 내재된 탐욕과 이기심이다.

우리 재판정에서 거짓 증언을 하는 위증 사범이 크게 늘어났다는 소식이다. 재판정은 흔히 거짓말 경연장으로 불린다. 죄를 논하는 자리에서 궁지에 몰린 피고인들이 거짓말이라는 악마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또 다른 거짓말 경연장이 되어버린 청문회와 함께 수치스러운 자화상이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우리 민족에 대한 자기 학대에 빠지지 않고 정직의 힘이 샘솟듯 흘러 넘치는 사회를 만들어 가느냐 하는 것이다. 세계적인 청렴국가들의 공통점은 절약과 청빈이 가치관으로 뿌리내린 것과 가족이나 친척 등 혈연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다. 돈과 권력이 사회구성원들의 지상과제가 되는 한 가난하지만 떳떳한 삶은 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으며 거짓말은 절대 줄어들 수 없다. 거짓말 권하는 사회를 탈출하기 위한 해법은 의외로 가까운 데 있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