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 콘텐츠기획본부 기자·부장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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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상영 중인 ‘타샤 튜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본 뒤, 그동안 타샤 튜더(1915∼2008)란 인물에 대해 속속들이 알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던 타샤는 시골에 집을 짓고, 고풍스러운 드레스를 입고 정원을 가꾸고, 동화 삽화를 그렸던 그야말로 ‘그림 같은 집’을 꾸몄던 미국 할머니였다.
알고 보니 타샤의 삶은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미국 보스턴의 저명한 가문 출신 아버지와 독립심 강한 화가 어머니는 타샤가 아홉 살 때 헤어졌다. 타샤 역시 결혼 7년 만에 갈라서 어린 네 자녀를 홀로 길렀다. 그녀는 저서 ‘타샤의 정원’에 썼다. “먹고살지 않으면 안 되니까 그림 그리는 일을 하지요. 만약 그럴 필요가 없다면 기쁜 마음으로 종일 정원에서 화초를 돌보며 아름답게 핀 꽃을 즐길지도 모르죠.”
내일의 성취보다 오늘의 식탁
타샤는 93세에 세상을 뜨기까지 100여 권의 그림책을 펴냈다. 부엌 한구석 작은 테이블에서 아이들 밥을 지으며 그 많은 책을 지었다. 타샤는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어린이 책 중 하나인 ‘비밀의 정원’의 삽화도 그렸는데 이 책으로 큰돈을 벌지는 못했다. 당장 살아갈 형편이 궁해 인세 대신 적은 삽화료만 받았다. 그런데도 늘 작은 순간들에서 행복을 찾았다. “행복이란 마음에 달렸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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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미술관에서는 ‘스틸(Still), 타샤 튜더’ 전시도 열리고 있다. 전시 연계로 영화가 재개봉한 것이다. 타샤의 그림 190여 점 속에는 특별한 사건도, 극적인 성공도 없다. 그저 계절의 흐름에 따라 가족이 함께 식탁을 차리고, 정원을 돌보고, 크리스마스 썰매를 타고, 벽난로 앞에 마주 앉아 나눈 평범한 일상이 있다. 흔히 떠올리는 이상적 가족의 표본과는 거리가 있어도 따스한 온기가 배어 있다. 가족은 타샤의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녀는 네 자녀와 반려견 ‘코기’의 모습을 담아 그림을 그렸고 자녀들은 ‘소신 있게 삶을 선택하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어머니의 삶을 존경했다.
가족, 삶을 지탱하는 비밀의 정원
요즘 우리는 거의 모든 세대가 고립돼 있다. 이런저런 성취의 목표에 내몰려 가족과 얼굴을 맞대는 시간이 짧다. 함께 있어도 디지털 화면을 본다. 그러면서 늘 ‘나중’을 말한다. 일이 끝나면, 형편이 나아지면 그땐 행복할 거라고. 타샤의 정원과 식탁은 우리가 잃어버린 행복의 감각을 소환한다. 그녀가 삽화를 그린 ‘비밀의 정원’ 속 아이들은 정원을 함께 가꾸며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열었다. 우리에게도 각자의 고립을 깨고 나올 일상의 정원이 필요하다.
1인 가족 등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졌지만 설 명절이면 우리는 늘 그래 왔듯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모인다. 하지만 밥상 위에는 성공을 잣대로 한 질문과 세대 간 갈등이 종종 오른다. 타샤의 식탁은 달랐다. 가족을 평가하거나 비교하지 않았고, 살아온 날들을 증명하느라 애쓰지 않았다. 이번 명절, 불필요한 호기심은 내려놓고 서로의 마음을 그저 주의 깊게 들어주면 좋겠다.
정원이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듯 가족도 그렇다. 정성과 시간을 들여 가꿀 때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가족이 이제 세상에 없거나, 있어도 만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지나간 시간은 후회해도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니 오늘의 식탁을 내일로 미뤄둘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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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콘텐츠기획본부 기자·부장급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