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사진 No. 147
● 외신기자들도 찍지 못하는 이란 시위
소강 국면에 들어섰다는 말이 나왔지만, 이번 주 초까지 이란에서는 시위가 이어졌고 사망자 소식도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외신 사진에서 시위 현장의 긴박함은 좀처럼 또렷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언론이 있지도 않거나 심각하지 않은 시위를 과장해 보도한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이란 정부의 언론 통제가 완벽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외신기자가 촬영한 이란 친정부 시위. People hold posters of the Iranian Supreme Leader Ayatollah Ali Khamenei during a funeral ceremony for a group of security forces, who were killed during anti-government protests, in Tehran, Iran, Wednesday, Jan. 14, 2026. (AP Photo/Vahid Salemi)
프랑스 파리에서 진행되는 반정부 시위. A protester holds a burning poster of Iran‘s Supreme Leader Ayatollah Ali Khamenei during a rally in support of the nationwide mass demonstrations in Iran against the government, Sunday, Jan. 11, 2026, in Paris. (AP Photo/Michel Euler)
이유는 단순합니다. 찍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란의 시위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이미지는 테헤란이 아니라 해외에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본질적인 현장이 아니기에 신문의 1면이나 핵심 지면을 채우기에는 부족합니다. 그 공백을 SNS가 메웁니다. 언론은 위험을 감수하며 SNS를 뒤집니다. 망명지에서 활동하는 반정부 단체의 홈페이지나 X 등에 올라온 사진을 찾아 검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란 시민이 SNS에 올린 반정부 시위. In this frame grab from footage circulating on social media shows protesters dancing and cheering around a bonfire as they take to the streets despite an intensifying crackdown as the Islamic Republic remains cut off from the rest of the world, in Tehran, Iran, Friday, Jan. 9, 2026.(UGC via AP)
● 이란 정부가 이미지를 차단하는 방식 — 디지털 블랙아웃(Digital Blackout)
시위가 있었는데도 사진이 거의 보이지 않는 이 상황 자체가 이번 사태를 이해하는 출발점입니다.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이유는 인터넷 차단입니다. 이란 당국은 시위가 확산되자 모바일 데이터와 SNS 접속을 단계적으로 제한했고, 지역 단위로 외부와 연결되는 출구를 닫았습니다. 단순한 속도 저하가 아니라, 현장에서 촬영된 사진과 영상이 외부로 빠져나갈 경로 자체를 봉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요즘 시위가 국제 여론으로 번지기 위해서는 현장의 반복된 이미지가 필요합니다. 그 고리가 초반부터 끊긴 셈입니다. 그러는 동안 친정부 언론의 텔레그램 피드는 꾸준히 업데이트됐습니다. 허용된 채널에서만 정보가 유통되는 구조가 유지됐습니다.
위성 인터넷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단말기 접근성은 제한적이었고, 사용 자체가 위험을 동반했습니다. 전파 교란이나 위치 노출의 가능성도 부담이었습니다. 일부 이미지는 외부로 전달됐지만 점처럼 흩어진 사례에 그쳤습니다. 흐름을 만들 만큼의 양도, 지속성도 부족했습니다. 인터넷이 차단된 사회에서 위성 인터넷은 상징적인 수단일 수는 있어도, 대중적 확산을 이끌기에는 한계가 분명해 보였습니다.
● 지난 혁명에서 이미지 통제 기술을 습득한 권력
외신에 반복적으로 등장한 장면은 친정부 집회와 정렬된 군중, 그리고 안정적인 구도의 사진들이었습니다. 혼란과 충돌의 이미지는 드물었고, 있더라도 단편적으로 소비됐습니다. 시위가 존재했음에도 국제 사회가 공유한 것은 통제 가능한 장면들이었습니다.
2011년 튀니지에서 시작된 자스민 혁명과 비교하면 차이는 더 분명해집니다. 당시에는 휴대전화로 촬영된 흔들린 영상, 통제되지 않은 거리, 문을 닫은 상점과 텅 빈 시장의 모습이 빠르게 상징 이미지로 굳어졌습니다. 화질은 거칠었지만 장면은 생생했고, 그 이미지들이 축적되며 ‘정권이 흔들리고 있다’는 인식이 국제 사회에 공유됐습니다. 혁명은 거리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이미지의 연쇄를 통해 가속화됐습니다.
이런 방식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역사적 사례가 있습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 세력은 국내 언론을 철저히 통제했을 뿐 아니라 외신 보도 역시 강하게 차단했습니다. 외국 기자들의 현장 접근과 이동은 제한됐고, 광주에서 촬영된 사진과 기사가 해외로 전달되는 과정도 통제 대상이었습니다. 국내 언론에는 군이 허용한 기사와 사진만 나가도록 관리됐습니다. 이후 일부 외신 보도가 소개되긴 했지만, 그것마저 온전히 전달되지는 못했습니다. 지금도 국회도서관 등에 보관된 당시 미국 뉴스위크와 타임지를 직접 확인해 보면, 기사 일부가 가위로 잘려 나가고 문장이 먹칠된 채 남아 있는 검열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외신조차 그대로는 유통되지 못했고, 권력이 허용한 부분만 선택적으로 남았습니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권력이 이미지를 다루는 방식은 더 정교해졌습니다. 오른손으로는 시위대를 진압하고, 왼손으로는 카메라와 인터넷을 통제하는 방식입니다.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유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누군가의 허락이 있어야만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 이란 사태는 다시 보여줍니다.
나중에라도 이란 현지의 참상을 기록한 사진이 역사에 기록으로 남을 수 있을까요? 누군가의 스마트폰에 아직 있을 사진들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