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재 음식평론가
일단 눈에 보이지 않는 맛의 켜가 있다. 모든 음식의 조리는 맛의 켜를 쌓아 올리는 과정이다. 소금, 간장, 된장, 발효조미료 등의 맛내기 요소를 끓이고 굽고 볶고 지지는 등의 조리법과 함께 쓴다. 이 과정에서 물리·화학적 반응이 일어나 식재료는 원래 상태보다 더 복합적이고 다양한 맛과 경험의 표정을 낸다. 이 표정이 바로 시간축 위에서 펼쳐지는 맛의 켜다.
눈에 보이는 맛의 켜도 있으니 케이크가 대표적이다. ‘켜를 이룬 케이크(Layered Cake)’라는 표현이 줄어 ‘케이크’가 됐을 정도로 켜는 케이크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달걀과 설탕, 버터 등을 유화시킨 지방에 밀가루를 더해 구운 케이크의 사이사이에 잼이나 크림 등을 발라 쌓은 뒤 숙성시켜 가른다. 이때 드러나는 단면의 아름다움이 바로 케이크의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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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이자 사실은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케이크 자체, 즉 ‘시트(sheet)’라 불리는 구운 반죽이 뒷전으로 밀려났다. 딸기케이크라면 시트가 주를 이루고 크림이 보조하며 딸기는 악센트를 주는 정도로만 쓰여야 맛의 균형이 맞는다. 하지만 이제 한국의 케이크는 앞의 두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딸기로 켜를 가득 채운다. 소위 ‘가성비’를 극한까지 좇은 결과물이다.
요즘은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아예 켜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생산자도 소비자도 갈라 드러나는 단면의 매력을 추구하고 감상할 마음의 여유나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내부를 이루는 요소, 즉 딸기케이크라면 딸기를 겉에 잔뜩 쌓거나 더덕더덕 붙여 과시한다. 양대 제과제빵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이런 케이크 붕괴의 첨병이다.
케이크는 밀가루와 설탕, 즉 가루로 원하는 만큼 형태를 빚을 수 있기에 가장 예술에 가까운 먹을거리다. 신비로움이나 상상력이 그 핵심으로, 인류는 케이크의 겉과 내부의 켜를 최대한 판이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이를 극대화해 왔다. 겉과 속의 아름다움을 별개로 추구해 눈과 입을 한꺼번에 즐겁게 해주는 방향으로 발전했다는 말이다.
이런 문법이 대략 2000년대 말∼2010년대 초반 미국에서 깨진 뒤 국내로 유입돼 맛있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케이크를 낳았다. 켜를 평평하게 고르지도 않아 가르면 삐뚤빼뚤한 단면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음식 또한 사회의 거울이라면 이런 케이크는 과연 우리의 어떤 면을 반영하고 있는 걸까?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못생긴 데다 비싸기까지 한 케이크에 ‘켜 아재’는 심기가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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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 음식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