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 평일 자정까지 운영하는 아동 돌봄센터 찾아보니 경북도 87%가 인구 소멸 위험지역 저출생 해결 위한 학부모 간담회서 돌봄 고충 파악… ‘K보듬6000’ 도입 소방서에도 24시간 돌봄 공간 설치… 입소문에 이용자 6개월 사이 2배로 충남도-광주시 등도 보육사업 확대… “플랫폼 노동자 등 위한 정책 필요” 복지-여가부 앞다퉈 유사 대책 내놔… “효율화 위해 중복 사업은 피해야”
야간이나 주말 등 급박한 시간에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발을 구르는 맞벌이 부부들에게는 필요할 때 손을 내밀어 줄 돌봄 서비스가 절실하다. 온종일 돌봄 모델로 주목받는 경북도를 찾아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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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8시경 아버지 조민석 씨(31)가 돌봄터에 들어왔다. 조 씨는 “아이 셋을 키우느라 회사 일이 끝난 뒤 아르바이트까지 하고 있다”며 “퇴근 시간이 늘 늦는데, 아이들을 늦게까지 맡길 수 있는 곳이 있어서 안심이다”라고 말했다.
올해 부모들이 직장에서 근무할 때 자녀들이 사고로 사망하는 사건이 잇따르면서 심야 시간대 ‘돌봄 사각지대’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올해 7월에는 부산 기장군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해 치킨집을 운영하는 부모가 외출한 사이 8세, 6세 자매가 숨졌다. 6월 부산진구에선 부모가 새벽 일을 나선 사이 10세, 7세 자매가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 대통령실은 야간 방임 아동 실태를 파악하고 심야 시간 아이 돌봄을 확대할 수 있는 대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 저출산 위기에 ‘야간 돌봄’… 이용자 2배로
경상북도 K보듬6000 프로젝트의 ‘구미24시 마을돌봄터’에서 8일 오후 8시 가까운 시간에 아이들이 교사들과 공부를 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경북도는 전체 지역의 87%가 소멸 위험지역이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저출산에 대한 위기의식이 높다. 저출생 해결책에 대한 주민 의견을 청취하는 과정에서 야간 돌봄 수요가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조상민 경북도 아이돌봄정책팀장은 “학부모 간담회에서 ‘평일 야간에 아이를 믿고 맡길 곳이 없다’는 이야기가 가장 많이 나왔다”며 “맞벌이 부부의 고충을 해결하는 것이 출생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고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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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시간 연장을 위해 우수 돌봄 교사 156명을 새로 채용했다. 오후 6시 이후에도 시간제 돌봄 교사 2명씩은 아이들을 돌볼 수 있도록 인원을 충원했고, 센터장이나 상근 돌봄 교사가 상주하며 아이를 돌보게 했다. 야간 돌봄을 시행할 경우 돌봄 교사 등에 대한 인건비가 늘어나는데, 평일 야간과 주말, 공휴일에 일할 인력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아 시간당 1만5000원씩 최대 30만 원을 추가 지급하고 있다.
● 소방서에 돌봄 공간 설치, 의용대원이 돌봐
돌봄 시간이 길어진 만큼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8일 오후 찾은 구미시 가족행복플라자 공동육아나눔터에서는 ‘생크림 케이크 만들기’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었다. 나눔터에서 돌봄을 받는 초등학생 12명이 케이크 시트를 자르고 생크림을 짜면서 케이크를 만들고 있었다. 야간 돌봄에 초등생 자녀를 보내고 있는 학부모 이혜정 씨(43)는 “학원을 갔다 집에 바로 오면 아이들이 할 일 없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나눔터에 오면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어서 만족한다”고 말했다. 줌바 댄스, 과학 수업, 외국인 강사와 함께하는 문화 수업 등이 오후 6시 이후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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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간 돌봄 전국 확대… 예산 확보-사업 중복은 과제
부모들은 야간 돌봄 공백을 메우는 방안으로 기존 돌봄센터 연장 운영을 선호했다. 41.8%는 “오후 10시까지 돌봄센터를 2시간 연장 운영하는 것을 원한다”고 답변했다. 돌보미가 집에서 돌봄을 진행하는 재가 방문(28%)과 친척·이웃 돌봄 강화(24.1%), 밤 12시까지 센터 연장 운영(14.8%)이 뒤를 이었다. 현재 복지부가 담당하는 지역아동센터와 다함께돌봄센터는 오후 1∼8시 운영을 원칙으로 하며, 교육부가 담당하는 초등 늘봄학교는 방과 후부터 오후 8시까지 운영 중이다.
여성가족부는 내년부터 아이돌봄서비스 야간 긴급수당을 신설했다. 부모가 야간 시간대에 급하게 외출해야 하는 경우 이용할 수 있도록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이용할 수 있는 긴급 돌봄을 신설하고, 중위소득 75% 이하 저소득 가구에는 이용자 본인부담금 중 야간 할증 요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아이돌보미에게는 야간 특화 긴급돌봄 수당 하루 5000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 학부모 “돌봄 서비스 부처별 달라 혼선도”
전문가들은 부모가 자신이 일하는 시간에 맞춰서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영미 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는 “플랫폼 노동자 등 정형화되지 않은 근로 시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많은데, 이들도 누군가의 부모”라며 “수요조사를 통해 돌봄 수요를 파악하고, 교통 요충지에 야간에도 운영하는 돌봄 시설을 지정하거나 야간에 아이돌보미를 보낼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 촘촘한 대책을 짜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산 효율화를 위해 중복으로 제공되고 있는 돌봄 서비스를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복지부는 방과 후 마을 돌봄시설 야간 연장 운영을 위해 약 31억 원이 들 것으로 예상한다. 여가부도 아이 돌봄 야간 긴급수당으로 22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돌봄 서비스를 이용한 부모들은 “돌봄 서비스가 지자체별로, 부처별로 산재하다 보니 어떤 서비스를 신청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경북도 관계자는 “K보듬6000 사업을 진행하려면 부처 세 곳과 협의를 거쳐 예산을 각각 받아야 한다”며 “돌봄 사업을 하나로 묶어 추진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역별로 돌봄 시설 편차가 크다 보니 지자체별로 맞춤형 돌봄을 제공하는 형태로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미=방성은 기자 bbang@donga.com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