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펜타곤 넘버3의 ‘中 억제 우선론’ 둘째, 고립주의 진영의 ‘MAGA 테스트’ 셋째, 럭비공 ‘트럼프 변덕’도 통과해야 진짜 시험대 오른 것은 ‘동맹의 내구력’
이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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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방부가 최근 80쪽가량의 새 국가방위전략(NDS) 작성을 마무리해 고위 관계자들에게 회람시켰다고 한다. 국방의 우선순위와 목표, 방위계획과 전력구조 등을 담은 NDS는 기밀로 분류된다. 대신 10∼20쪽의 요약본이 한 달쯤 뒤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는 이 NDS를 기반으로 미군 전력을 전 세계 어디에 얼마나 배치할지 결정하는 글로벌태세보고서(GPR)도 늦여름 또는 초가을 완료할 예정이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올해 초 NDS 잠정지침을 통해 엘브리지 콜비 정책차관에게 제시한 우선순위는 △미국 본토 방위 △중국에 대한 억제 △동맹·파트너의 책임 분담 등 세 가지다. 국경수비와 영공방어를 넘어 불법이민 같은 국내 문제에도 군의 역할을 주문하는가 하면, 중국의 대만 침공을 최우선 단독 시나리오로 삼아 대비 방안을 마련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면서 유럽과 중동, 동아시아 방위는 그 지역 동맹들에 맡기도록 했다.
새 NDS와 GPR 완료를 앞두고 세계 각국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특히 동맹들 사이에선 미국의 지나친 비밀주의와 일방주의에 대한 볼멘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당장 주한미군을 두고도 현재 2만8500명의 약 16%인 1개 전투여단을 빼낼 것이라는 외신 보도부터 65%의 대규모 감축을 권고하는 싱크탱크 보고서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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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콜비도 이른바 ‘동시 전쟁의 문제’와 북한 핵무장이라는 주요 변수를 무시하진 않는다. 대만해협과 한반도 어디서든 전쟁이 나면 두 개의 동시 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큰데, 그 경우 미국이 중국을 저지할 때까지 한국은 홀로 버텨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편 북한 핵무기는 콜비에게도 난감한 문제다. 결국 최후의 선택지로서 ‘우호적 핵확산’도 고려할 수 있다는 선에서 얼버무리고 만다.
두 번째 시험대는 이른바 자제론 그룹(restrainers)의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테스트’다. 펜타곤 등 안보기관을 장악한 자제론은 미 본토 방위, 나아가 서반구 안보의 공고화에 주력하자는 고립주의 노선이다. 이들은 미군 전력이 너무 중국 가까이 공세적으로 배치돼 있어 중국을 억제하기보다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다며 후방으로 이동 배치할 것을 권고한다. 심지어 대만 방어를 위한 미군의 직접 개입도 불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중국의 공격에 취약한 제1도련선(일본 규슈∼오키나와∼대만∼필리핀)의 전력을 빼내 제2도련선(일본 혼슈∼괌∼사이판∼인도네시아) 너머로 옮길 것을 제안한다. 한반도는 물론이고 오키나와의 주일 해병대까지 빼내고 대만의 소수 군사훈련단도 철수하자는 것이다. 다만 새로 미군을 배치할 기지가 마땅찮고 인프라 건설엔 비용이 많이 든다는 문제가 있다.
세 번째 관문은 ‘최고 딜 메이커’ 트럼프 대통령이란 불가측 불확실성 변수다. 트럼프는 동맹 간 거래에 터무니없는 손익계산의 잣대를 내밀거나 예상 밖의 조건을 내걸기 일쑤다. 다만 디테일엔 전혀 관심이 없는 트럼프인 만큼 정상 차원에서 우호적 타협을 이룬 뒤 실무적으로 세부 쟁점을 풀어가는 협상 전략이 통할 여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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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의 미래 앞엔 중국 견제론과 2선 배치론, 트럼프 변덕까지 산 넘어 산의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 정부는 선제적 국방비 증액과 한미 조선 협력(마스가 프로젝트)을 통해 일단 트럼프의 충동적 철수론을 눌러놓은 모양새지만 ‘동맹 현대화’라는 이름의 양국 간 줄다리기는 이제부터 시작일 것이다.
그간 주한미군은 동맹의 유일한 지표처럼 여겨졌다. 작은 변화나 조정도 국내 여론이나 정치 풍향에 민감하게 작용했다. 앞으로 한미 간 논의 과정에서도 논란과 파장은 적지 않을 것이다. 진짜 시험대에 오른 것은 동맹의 내구력일지 모른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