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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서라벌서 펼쳐지는 미스터리 추리극

입력 | 2023-10-28 01:40:00

정세랑 작가의 첫 추리소설
남자로 살아야 했던 여성 주인공
왕실서 벌어지는 수수께끼 해결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정세랑 지음/296쪽·1만6800원·문학동네




당나라에서 통일신라로 향하던 배에서 한 상인이 살해됐다. 갑판에 쓰러져 있는 시신의 목엔 졸린 흔적이 짙게 남아 있고, 몸 뒷면은 멍이 들어 있었다. 뒤에서 누군가 올라타 목을 조르며 무릎이나 발로 누른 듯했다. 누가, 왜 이런 범행을 저질렀을까.

유학을 떠났다가 고국으로 돌아가던 신라인 유학생 설자은은 추리를 시작했다. 시신에 진주 장신구가 걸쳐져 있는 걸 보니 범행 목적이 돈이 아닌 것 같았다. 상인은 배에 탈 때 두 여자를 데리고 탔는데 보이지 않았다. 여러 배가 함께 항해하고 있었던 만큼 범인이 살인을 벌인 배에서 다른 배로 옮겨 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조사 끝에 설자은은 유력한 용의자를 찾아낸다. 하지만 설자은은 곧 추리를 그만둔다. 사라진 두 여자가 과거 당나라에 끌려갔던 여성들이고, 상인은 이 여성들을 이용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왜 범인을 밝히지 않냐고 묻자 설자은은 웃으며 답한다. “일단 가기나 갑시다, 금성(서라벌)으로.”

통일신라 서라벌을 배경으로 남장 여자 설자은이 여러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를 담은 미스터리 장편소설이다. 주인공은 오빠가 당나라 유학을 앞두고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오빠로 행세하기로 결심한다. 오빠와 얼굴이 닮았고, 머리가 좋았다. 하지만 여성이어서 공부를 할 수 없어 기회를 만든 것이다. 유학을 마치고 신라에 돌아온 설자은은 왕실에서 일하며 수수께끼 같은 사건을 척척 해결한다.

동명 드라마로 제작돼 화제가 된 장편소설 ‘보건교사 안은영’(2015년·민음사)으로 유명한 작가가 3년 만에 내놓은 새 장편소설이다. 남장 여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여성의 한계를 뛰어넘는 설정은 여성 삼대를 통해 여성주의 시각을 담은 장편소설 ‘시선으로부터,’(2020년·문학동네)를 생각나게 한다. 논리적 사고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추리 소설의 전형을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공상과학(SF), 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문학을 썼던 작가가 추리물에 처음 도전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작가는 2편 ‘설자은, 불꽃을 쫓다’, 3편 ‘설자은, 호랑이 등에 올라타다’를 펴낼 계획이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계절마다 경주에 가 다음 이야기를 건져오고 싶다”고 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