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로드중
고종이 행차할 때 사용하던 덕수궁 대한문이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아픔을 지우고 원래 모습을 되찾는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덕수궁관리소는 대한제국 황궁 정문인 대한문의 면모를 되찾기 위해 일제강점기에 사라진 덕수궁 대한문의 월대(月臺)를 재현하는 설계를 이달 시작한다고 8일 밝혔다.
월대는 궁궐의 정전(正殿), 묘단(廟壇), 향교(鄕校) 등 주요 건물 앞에 설치하는 넓은 기단 형식의 대(臺)다. 덕수궁 대한문, 경복궁 광화문, 창덕궁 돈화문 등 궁궐 정문을 비롯해 덕수궁 중화전, 경복궁 근정전 등 주요 정전에 설치돼 건물의 위엄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 궁궐 정문 구성의 필수 요건이다.
광고 로드중
대한문은 앞서 1970년 태평로를 확장하면서 원래 위치에서 33m가량 물러선 현재 위치에 있게 됐다.
덕수궁 대한문의 원래 이름은 ‘대안문(大安門)’이며 황성신문(1899년 2월 15일자 ‘대안문 현판 서사관(書寫官)을 의정부 참정 민병석으로 임명한다. 광무 2년(1898년) 6월 26일’)과 독립신문(1899년 3월 3일자 ‘정동 대궐 새로 지은 정문에 대안문(大安門)이라 쓴 현판을 재작일에 달았는데 또 그 문 앞 축대역사도 시작하였다더라’)의 기록으로 볼 때 1898년께부터 지은 것으로 파악된다.
1904년 덕수궁 대화재 때 대안문은 불타지 않았지만 보수하면서 1906년에 문 이름을 ‘대한문(大漢門)’으로 고쳤다.
대한문의 월대는 1899년에 공사가 시작됐으며 1900년에 월대를 새로 고쳤다는 각사등록, 각부청의서존안의 기록이 있어 적어도 1900년 전에 대한문 월대가 완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광고 로드중
고종이 환구단이나 왕릉으로 행차할 때 사용했고 1910년 대한제국의 마지막까지 궁궐 정문에서 격동했던 근대사를 묵묵히 지키고 있었던 곳인 만큼 이번 월대 재현은 일제에 의해 훼손되고 지워진 우리 역사를 되찾는 의미가 있다는 게 문화재청의 설명이다.
월대는 오는 7월까지 설계를 마친 뒤 관련 전문가의 자문을 거쳐 내년까지 재현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관계자는 “앞으로도 우리 궁궐의 원형을 연구하고 복원해 더 많은 국민이 대한제국의 황실과 황궁의 문화를 이해하고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계기를 마련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