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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송충현]누가 한전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나

입력 | 2019-03-07 03:00:00


송충현 경제부 기자

“눈 딱 감고 한 번만 넘어가 주시죠. 담당 부서가 너무 힘들어합니다.”(한국전력공사 관계자)

4일 본보는 한전이 지난달 국회 에너지특별위원회에 농사용 전기 인상 계획을 담은 ‘전기요금 체계 개편 설명자료’를 제출한 사실을 기사화했다. 한전이 주택용 누진제와 산업용 요금체계 개편에 이어 전국 184만 곳의 농가와 기업농이 사용하는 농사용 전기료 인상을 추진한다는 내용이었다.

기사가 나간 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성명서를 내고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추진에 따른 전력 수급 부족을 농업인의 희생을 담보로 무마하려는 꼼수”라고 비판했다. “농사용 전기 수혜 대상을 축소하면 현 정부가 추진하는 스마트팜 사업에 막대한 영향이 예상된다”고도 했다.

이에 한전은 이해하기 힘든 반응을 내놨다. 해명자료를 통해 “농사용 요금체계 개편과 관련한 설명자료를 국회 에너지특위 등 대외에 제출한 바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 해명은 거짓말이다. 국회 관계자는 한전 영업본부 요금전략실장이 지난달 12일 차장 2명과 직접 국회를 방문해 자료를 건넸다고 확인했다.

기자가 “왜 거짓말을 하느냐”고 항의하자 한전은 “그냥 넘어가 달라”며 ‘앓는 소리’를 했다. 도대체 한전이 언론과 국회를 거짓말쟁이로 만들면서까지 모면해야 할 상황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사실 전기료 기사를 쓸 때마다 한전은 물론 전기요금을 인가하는 산업통상자원부까지 필요 이상으로 과민하게 반응하는 측면이 있다. 한전과 산업부가 민감해하는 것은 원자력발전을 줄이는 탈원전 정책과 관련이 있다. 정부가 전기요금을 올린다고 할 때 적지 않은 시민들은 발전비용이 싼 원전을 줄인 결과 요금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한전과 산업부는 전기료 이슈가 있을 때마다 언론에 “탈원전 때문이라는 표현을 가급적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위에서 난리가 났다”며 기사의 소스를 알려달라는 정부 당국자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정작 ‘위’의 실체를 알려주지는 않았다.

한전과 산업부 모두 원전 가동이 줄면 영업비용이 늘어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비용 증가는 요금 인상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부와 한전은 전기료 인상과 원전 정책은 별개라고 강조한다. 전기료가 오르더라도 그건 소비자들의 불합리한 전기 이용 행태 때문이지 탈원전을 내세운 정부 정책이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농민과 기업이 전기를 펑펑 쓰는 관행을 잡기 위해 요금제를 개편하면 결과적으로 전기료가 올라갈 수 있고 적자도 메워지겠지만, 수익성을 높이려고 요금제를 개편하는 것은 아니니 자신들은 ‘무죄’라는 식이다.

농민들은 “탈원전으로 인한 전력 부족문제를 우리 희생을 담보로 해결하려 들지 말라”며 분노한다.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문제의 원인이 뭔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과소비라는 프레임으로 국민들에게 책임을 떠넘겨선 전기료 인상에 대한 의구심만 키울 뿐이다. 에너지 과소비는 과소비대로, 정부 정책은 정책대로 요금 인상에 미치는 영향을 공개한 뒤 전기료를 올릴 수밖에 없는 사정을 설득하는 것이 정직한 행정이다.
 
송충현 경제부 기자 bal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