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이 없는 한국은 원자력발전에 승부를 걸었다. 원자력이 ‘두뇌에서 캐는 에너지’로 불리는 이유다. 1956년 문교부에 원자력과를 만들고 연구생들을 미국 아르곤연구소에 파견했다. 1958년 한양대, 1959년엔 서울대에 원자력공학과를 신설하고 인재 육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1978년 4월 첫 원전 고리 1호기가 상업운전을 시작하면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21번째,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인도, 파키스탄에 이어 4번째로 ‘제3의 불’을 점화한 나라가 됐다. 선진국들이 핵실험을 할 때 원자력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한국이 세계 4대 원전 수출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데에는 ‘두뇌’의 힘이 결정적이었다.
▷KAIST에서 올해 2학기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전공 희망 학생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1991년 학부 과정 개설 이후 27년 만에 처음이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역시 2017년 후기 대학원생 모집 때 정원 5명의 박사과정에 1명, 37명의 석·박사 통합과정 모집에 11명이 지원해 미달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돌입한 세계는 원자력을 안정적인 에너지원으로 인정하는 추세인데도 유독 한국에선 미래가 없는 학문으로 전락하고 있다. 과학기술계는 50년 동안 쌓아온 기술과 연구력이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에 떨고 있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