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채널A 공동취재]문화가 흐르는 파리 지하철 역사
이달 2일 오후 프랑스 파리 주요 환승역 중 한 곳인 레퓌블리크 역사 안에서 듀엣 ‘더캡틴’이 공연을 펼치고 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준비가 끝나자 쥘리앵은 바닥에 기타 가방을 펼쳐 놓고 자신들이 작곡하고 부른 노래가 담긴 CD를 올려놓은 뒤 그 안에 동전 몇 개를 던져 놓았다. 그는 “시민들의 지갑을 쉽게 열기 위한 팁”이라며 웃었다.
노래가 시작되자 바쁘게 지나가던 파리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30분 후 기타 가방 안에는 시민들이 던져 준 돈 40유로가 쌓였다.
이 배지를 받으려면 6개월마다 열리는 오디션을 통과해야 한다. 최근 오디션에 2000명 이상이 몰려들었다. 7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300명의 지하철 뮤지션들은 예외 없이 6개월마다 이런 오디션을 다시 거쳐야 한다.
1997년 이 프로그램을 처음 만들어 ‘지하철 뮤지션의 대부’로 불리는 RATP 앙투안 가조 예술감독은 “파리 시민에게는 수준 높은 음악을 공짜로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젊은 뮤지션에게는 관객들에게 자신을 알릴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뮤지션들 사이에서 지하철 뮤지션이 인기가 좋은 이유는 일단 수입이 쏠쏠하기 때문. 인더캔의 쥘리앵은 “충분히 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돈이 모인다”고 말했다.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기회도 된다. 세계적인 펑크 기타리스트 케지아 존스나 프랑스 국민 샹송가수 자즈 역시 파리 지하철 뮤지션 출신이다.
실력이 뛰어나다 보니 팬들도 생겨났다. 파리 외곽 생클루에 사는 20대 블랑딘은 매주 금요일 인더캔 연주를 감상하기 위해 리옹역을 찾는다. 콘서트장에 온 듯 맨 앞줄에 서서 몸을 흔들며 음악을 듣던 그는 “샤틀레 전철역에서 이 팀의 공연을 보고 첫눈에 반해 매주 온다”고 말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