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첫 교잡종 사례로 주목
황금왕관 마나킨의 깃털. 토론토대 제공
제이슨 위어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팀은 아마존 열대우림 지역에 서식하는 조(鳥)류인 황금왕관 마나킨(Lepidothrix vilasboasi)이 서로 다른 두 종이 만나 만들어진 새로운 종이라고 25일 밝혔다. 이 연구는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될 예정이다. 황금왕관 마나킨의 부모종은 인근 지역에 서식하는 흰머리 마나킨(Lepidothrix nattereri)과 오색왕관 마나킨(Lepidothrix iris)이다. 세 종은 모두 몸 전체가 녹색을 띠는데 머리 부분의 깃털 색이 다르다. 황금왕관 마나킨은 노란색, 흰머리 마나킨은 흰색으로 덮여 있다. 오색왕관 마나킨은 오팔처럼 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달라지면서 무지갯빛을 띤다.
다만 이들은 생식 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유전자가 불안정해 감수분열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아 생식세포가 정상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1900년대 중반 일본에서 사자-표범의 교잡종인 레오폰을 만든 뒤 생식 호르몬을 투여해가며 번식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이종 간 교잡으로 새로운 생물이 만들어져도 세대를 거듭하며 번식이 불가능하다면 새로운 종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종 간 교배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자연에서 교잡은 유전적 다양성을 늘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서로 다른 유전자가 합쳐지면서 새로운 돌연변이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식물에서 교잡종이 새로운 종으로 자리 잡는 사례는 여러 번 발견됐다. 봄이면 길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제비꽃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만 50종이 넘는 제비꽃이 보고됐다. 꽃가루를 통한 유성생식은 곤충이나 바람 등에 의지해 다른 종의 꽃가루를 받을 수 있어 교잡 확률이 높다. 게다가 씨앗을 통한 유성생식에 의지하지 않고 줄기나 잎, 뿌리를 이용해 무성 생식도 가능해 일단 교잡이 일어나면 번식이 가능하다.
자연에서 동물 교잡은 환경이 극단적으로 바뀔 때 일어난다. 황금왕관 마나킨 역시 흰머리 마나킨과 오색왕관 마나킨의 서식지가 합쳐지면서 두 종 간 교잡이 일어났다. 지금은 강을 경계로 두 종의 서식지가 구분돼 있지만 18만∼30만 년 전 빙하기 때는 물길이 지금과 달라 두 종의 서식지가 합쳐졌고 이때 황금왕관 마나킨이 등장했다.
최근에는 북극 지역이 새로운 교잡종 탄생 지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얼음이 녹으면서다. 2006년 지구온난화로 서식지를 잃은 북극곰이 캐나다 북부로 내려와 그 지역에 서식하던 갈색 그리즐리베어와 교잡한 사례가 보고됐다. 북극 지역의 얼음 때문에 서식지가 완전히 분리돼 있었던 일각고래와 흰돌고래가 만나 교잡한 사례도 있다. 특히 북극곰과 갈색 그리즐리베어 교잡종은 최근에도 계속 발견되고, 2세대도 보이는 만큼 교잡이 계속된다면 황금왕관 마나킨처럼 하나의 종으로 굳어질 수도 있다. 위어 교수는 “서로 다른 환경에 적응한 두 종이 만나 교잡종을 만들기는 어렵지만, 큰 폭의 지리적 변화가 새로운 종을 탄생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