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재호 과학평론가
인간은 약 500만 개의 털을 갖고 있는데, 매일 평균 50∼100개가 빠진다. 또한 체중의 약 16%를 차지하는 피부가 1년에 10회 이상 새로운 피부로 바뀐다. 피부세포의 수명이 약 35일이기 때문이다. 즉 인간도 탈피를 한다.
그런데 탈피의 과정보단 결과만 자주 보이는 이유는 뭘까? 9월 세계 경제곤충학회지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흰개미들은 탈피를 위해 끊임없이 둥지로 돌아가려는 충동을 느낀다고 한다. 플로리다대 연구진은 흰개미들이 둥지에서 은밀히 흔적을 남기며, 탈피 후 둥지 근처에서 36시간 동안 머물렀다고 밝혔다. 아무 데서나 탈피를 하는 게 아니다.
광고 로드중
곤충학 연구에 따르면, 탈피는 폐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다. 인간으로 비유하면 말이다. 특히 탈피 직후의 몸은 말랑거리기 때문에 매우 약하고 포식자한테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다 벗지 못해 죽는 탈피사도 일어난다. 갑각과 새로운 부분이 올바르게 분리가 안 돼 장기에 손상을 입기도 한다. 가재의 경우 물속 칼슘 농도가 낮으면 탈피 이후 쉽게 껍질이 딱딱해지지 못하거나, 인간의 뼈가 삭듯 갑각이 썩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번거롭고 힘든 탈피를 하는 걸까? 바로 성장을 위해서다. 곤충은 몸집이 작아 뼈를 가질 수는 없다. 이때 외골격은 곤충을 천적으로부터 보호하며 내부 장기를 지켜준다. 또한 외골격은 수분 증발을 막아 초기 수중 생물이 육상 생활을 가능하게끔 했다. 곤충의 외골격은 탄수화물 30∼50%, 단백질 40∼60%, 이외 지질, 무기이온, 수분 등으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단단하기 때문에 성장하기 힘들다. 따라서 탈피, 즉 묵은 표피층을 벗어버려야만 성장이 가능하다. 성장을 위한 한 편의 파노라마다.
탈피는 신중히 진행된다. 근육이나 감각 신경들이 떨어져 나갈 표피층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5종류 이상의 호르몬이 방출되며 표피층 사이에 공간이 생기면서 탈피액이 분비된다. 이후 새로운 표피가 주름과 함께 층을 형성한다. 3분의 1 정도의 표피층이 떨어져 나가는 탈피가 끝나면 주름 잡힌 새 표피층이 펼쳐지면서 몸의 표면적이 넓어진다. 이제 외부 골격이 단단해지면서 성장한다. 탈바꿈하는 것이다.
탈피의 라틴어 어원은 변화이다. 목숨을 위해 무겁고 때론 거추장스러울 수 있는 껍질을 맨다. 그러다가 성장 때문에 고향을 찾아가 고통스러운 탈피를 한다. 생명의 성장, 그 비밀은 어쩌면 살기 위해 삶의 근간을 버려야 하는 모순에 있을지 모른다. 그 모험에 나서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진화를 결정한다.
광고 로드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