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평생교육 시대]<2> 일본의 시민주도형 생애학습
11일 일본 도쿄도 구니타치시 공민관 1층 로비에 있는 카페 ‘와이가야’에서 장애가 있는 청년과 비장애 청년들이 함께 음료와 베이커리 제품을 만들어 손님에게 판매하고 있다. 구니타치=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 청년부터 노인까지 스스로 기획
공민관(公民館)은 일본이 패전 후 사회교육법을 제정해 전국에 설치한 평생교육시설이다. 대부분 기초단체가 운영하는 교육시설이면서 주민의 사회참여 거점이기도 하다. 1955년 만든 도쿄(東京)도 구니타치(國立)시 공민관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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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모임인 ‘서클’ 활동은 노년층에서 가장 활발하다. 처음 지었을 때는 고등교육을 못 받은 청년과 전업주부가 가장 많았다. 공민관으로는 전국에서 처음 보육실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노인 인구가 늘면서 노년층 강좌인 실버학습실 인기도 높아졌다. 고혈압과 뼈엉성증(골다공증) 예방에 좋은 조리법을 배우는 요리교실과 자연관찰교실, 시민단체 ‘구니타치 생활을 기록하는 모임’ 소속 강사가 진행하는 향토사 배우기 교실 등 다양하다.
실버학습실 인기는 ‘졸업’ 후에도 이어진다. 강좌를 들은 노인 200여 명이 모인 서클에서는 원하는 주제에 따라 10∼20명 단위의 유닛(unit)을 구성해 활동한다. 초등학교 일본어 교사로 은퇴한 뒤 이곳에서 20년째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마쓰다 사다에(松田貞江·80) 씨는 “무료인 데다 규제가 없어 자율적으로 공부하고 활동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2010년부터 노인들이 기획한 ‘알츠하이머병 학습실’도 인기다. 치매 등 중증질환자 간병인 모임이 제시한 기획안을 공민관 운영심의위원회에서 실제 프로그램화했다. 오후 1시 반∼4시에 열리는 이 프로그램에서는 관련 영화를 보고 서로 간병 경험을 나눈다.
청년 프로그램은 여전히 활발하다. 1층 로비에는 “장애, 비장애 청년이 함께 일할 공간을 마련하자”며 청년들이 만든 카페 ‘와이가야’가 있다. 히토쓰바시(一橋)대 등 인근 대학의 학생들은 수요일 저녁마다 ‘LABO구니스타’라는 학습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중고교생들을 대상으로 무료 과외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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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뺨치는 강의 수준
1980년 이후 공민관 이외에도 다양한 평생교육기관이 등장했다. 지자체나 시민단체가 여러 형태의 시민대학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12일 찾은 가나가와(神奈川)현 가와사키(川崎)시 시민아카데미에서는 매 학기 수준 높은 강좌를 선보인다. 이곳은 1993년 아예 노년층을 타깃으로 설립했다. 지난해 수강생 6882명 중 41%가 60대, 47%가 70대 이상이다.
한국의 평생학습관이 서예 가요 운동 등 취미생활 강좌 위주라면 가와사키 시민아카데미는 올 2학기 기준으로 국제관계, 환경과 미도리(녹색), 새로운 과학의 세계를 비롯해 38개 정규 강좌가 개설됐다. 나가타 슌이치(長田俊一) 사무국장은 “수강료는 강의당 약 1000엔(약 1만 원) 정도로 대학이나 신문사 교양강좌의 3분의 1 수준”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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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특성을 살린 강의도 많다. 산업이 발달된 만큼 수강생들이 지역 기업 최고경영자를 직접 초청해 강의를 듣는다. 지역 환경과 역사를 공부하는 ‘가와사키학(學)’은 인기가 높다. 현장을 직접 탐방하면서 건축, 시설물과 환경변화를 관찰한다.
최근에는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에도 관심이 커진다. 요양원에서 치매 노인들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아동 빈곤문제 해결 방법을 논의한다. 공립 수도대학도쿄 김윤정 교수는 “학습기회가 풍요로워진 만큼 시민대학의 목표는 단순히 강의를 제공하기보다 사회를 성숙하게 이끌어갈 시민을 길러내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구니타치·가와사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