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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셰 제친 현대차 품질… 26년전 ‘엘란트라의 굴욕’ 날리다

입력 | 2017-06-27 03:00:00


1991년 현대자동차 엘란트라 TV 광고 중 한 장면. 독일 아우토반에서 엘란트라(아래 차)가 포르셰911과의 속도 경쟁에서 앞서 나가는 모습을 연출했다가 과장광고 논란을 불렀다. 현대자동차 제공


독일 뮌헨 인근의 도로.

“아우토반, 속도는 무제한 성능은 최대한!”이란 음성과 함께 멀리서 차 한 대가 굉음을 내며 질주해온다. 이를 보고 놀란 포르셰911 운전자는 질세라 가속페달을 밟는다. 두 차가 벌이는 살벌한 속도전. 엎치락뒤치락 끝에 정체불명의 차가 앞질러 나간다. 열심히 따라가던 포르셰는 결국 뒤처진다. 포르셰 운전석의 외국인은 패배를 시인하듯 경쟁 차를 바라보더니 엄지를 ‘척’하고 치켜든다. ‘당신의 승리’라는 뜻. 그때 나오는 장엄한 멘트.

“세계의 명차와 함께 달린다. 고성능 엘란트라.”

1991년 현대자동차 엘란트라 TV CF다. 이 광고는 전파를 타자마자 과장광고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엘란트라는 125마력, 최고속도 시속 180km였다. 엘란트라가 제친 포르셰911(964터보)은 3.6L 엔진에서 385마력을 뿜어내는 스포츠카였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에 도달하는 시간(제로백)은 5.5초. 최고속도는 시속 260km가 넘는다. 최고 속력으로 달린다면 엘란트라는 절대로 포르셰를 추월할 수 없다.

이 광고 때문에 현대차는 오히려 굴욕을 맛봤다. 포르셰 운전자가 치켜든 엄지손가락이 “나는 기어 1단 넣고 달렸다”는 의미라는 조롱 섞인 농담이 PC통신에 퍼졌다. 세계 최고의 스포츠카 제조업체 포르셰와 후발주자 현대차 사이의 격차만 부각시킨 꼴이었다.

이랬던 현대차가 26년이 지나 정말 포르셰를 제쳤다. ‘속도’ 이야기는 아니다. 품질에 관해서다.

최근 미국의 시장조사기관 제이디파워(J.D.Power)의 올해 신차 품질 조사에서 기아자동차가 종합 1위, 현대차의 고급브랜드 제네시스가 2위에 올랐다. 현대차그룹의 두 브랜드가 나란히 1, 2위를 석권한 것이다. 지난해 조사에서 기아차에 밀려 2위로 떨어진 포르셰는 올해 처음 데뷔한 제네시스에도 밀려 3위로 떨어졌다. 포르셰는 같은 조사에서 2006년부터 2015년까지 10년간 7번이나 1위를 한 전통의 강자다. 나머지 3번은 일본의 렉서스였다.


조사결과는 현대차그룹 내에서도 화제가 됐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세계 판매 5위 브랜드인지라 웬만한 결과에는 크게 놀라지 않는다. 해외 품질상을 받거나 개별 차종이 판매 1위에 오르는 일은 흔하다. 하지만 이번에 기아차와 제네시스가 포르셰를 누른 제이디파워 발표에는 남달랐다. 그룹 관계자는 “결과를 접하고 너무 기뻤다. 우리가 국위 선양을 한 기분”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과거의 설움을 털어낸 것 같다”고 말했다. 엘란트라와 포르셰가 경쟁한 26년 전 광고도 온라인에서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세계 최초로 수소연료전지자동차(FCEV) 투싼ix35를 양산해 낼 정도로 성장했다. 최근에는 아이오닉으로 하이브리드, 전기차,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친환경차 풀 라인업을 갖췄다. 고급차 시장을 겨냥한 제네시스 브랜드와 기아차 스팅어도 만들었다. 커넥티드카, 자율주행기술 등 미래차를 겨냥한 소프트웨어(SW) 개발에도 착수했다. 국내 한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현대·기아차가 국내 소비자들로부터 원망을 많이 듣는 것도 사실이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해외 브랜드와 동등하게 경쟁하는 유일한 한국 브랜드”라고 말했다.

지난해 세계 판매 1위는 폴크스바겐그룹(1031만 대), 2위 도요타(1017만 대)였다. 현대·기아차는 788만 대(5위)였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품질에서 포르셰를 제친 것처럼 판매량에서도 폴크스바겐과 도요타를 제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