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덕꾸러기서 귀하신 몸 된 ‘대변’
○ 건강한 대변이 보약이 되는 시대
장내 미생물을 의미하는 ‘마이크로바이옴’의 현미경 이미지. 위키미디어 제공
○ 대변 1g에 100조 개…대변 속에 우주 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대변 1g에는 약 1000종류의 마이크로바이옴이 1000억 개에서 100조 개가량 산다. 장 속 마이크로바이옴을 모두 합친 무게는 1∼1.5kg으로 간 무게와 비슷하다. 대변이 마이크로바이옴을 등에 업고 귀한 존재로 변모한 건 최근 일이다.
2014년 학술지 ‘셀’에 실린 연구에서 사람의 장내 미생물이 쥐의 비만을 예방하거나 유발할 수 있음이 밝혀졌다. 뚱뚱한 사람의 장내 미생물을 이식받은 쥐는 뚱뚱해졌고, 마른 사람의 장내 미생물을 이식받은 쥐는 날씬해졌기 때문이다. 셀 제공
이후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생명연)이 생명공학 논문 검색 사이트 ‘펍메드(Pubmed)’를 분석한 결과, 2006년 332편이던 마이크로바이옴 관련 논문은 2016년 20배 이상인 7434편으로 늘었다.
김병찬 생명연 대사제어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한 해에 7000편이 넘는 논문이 쏟아져도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90%가 넘는 미지의 세계”라며 “비만, 당뇨 같은 대사성 질환을 비롯해 암, 아토피, 뇌질환, 정신질환 등 대부분의 질병과 마이크로바이옴의 상관관계가 규명되고 있다”고 말했다.
2014년 서울대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신선한 대변을 제공하면 3만 원 상품권을 준다’는 공고가 올라왔다. 고광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에 쓸 재료를 수집하기 위해 올린 공고였다. ‘6개월 이내 어떤 항생제도 투여한 적 없는 20∼40세 건강한 성인의 대변’이라는 요구 조건을 걸었는데, 하루 만에 모집 인원 30명이 채워졌다.
고 교수처럼 건강한 대변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움직임은 곳곳에 생겼다. 2013년 미국 보스턴에 설립된 대변은행 ‘오픈바이옴(Openbiome)’은 건강한 대변을 제공하는 사람에게 연간 1000만 원의 금전적 혜택도 준다. 수집된 대변은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를 토대로 건강기능식품을 만들거나, 의학치료인 ‘대변 이식’에 쓰인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6월 대변 이식이 정식 의료기술로 인정받았다.
이동호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대변 이식은 마이크로바이옴 구성을 빠르게 회복시키는 치료법”이라며 “항생제를 오남용하지 않고, 스트레스가 적으며 꾸준히 운동을 한 좋은 대변을 가진 사람이 ‘슈퍼 기증자’로 평가받는다”고 말했다.
권예슬 동아사이언스 기자 yskwon@donga.com